''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이 발칙한 문구를 공중파 3사의 마이크와 함께 포스터에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가 극장가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16일 현재 맥스무비 관객 평점 순위 집계결과, 8.87점(10점 만점)을 얻어 상영작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얻고 있는 것. 단체관람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개봉 당시 10개 관에 그쳤던 상영관도 전국 22개 관으로 늘었다. 독립영화지만, 영화 예매순위 차트에서 10위에 랭크되는 이변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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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감독은 지난 14일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TV가 시청자를 속이는 사례는 맛집 뿐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상파 방송의 ''주부 대상 아침 토크프로그램''과 ''창업지원 프로그램'' 등도 협찬을 매개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고발성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단단히 작심하고 거대 방송사와의 싸움에 나선 듯 보였다.
맛집 문제를 다룬 ''트루맛쇼''는 그가 애초 기획한 ''미디어 3부작'' 가운데 첫 편에 불과하다.
그는 2편에서는 의사와 점쟁이, 쉐프,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같은 전문가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방송에 출연하게 되는지를 파헤칠 예정이다.
3편의 주제는 ''드라마 야외세트장의 경제학''이다. 드라마 야외세트장 건립을 둘러싼 제작사와 땅 주인,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수상한 거래를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김 감독은 방송사들이 ''쉬쉬''하며 불편해하는 ''협찬''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으로 열어젖혔다. MBC는 ''트루맛쇼'' 개봉을 막기 위해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했다. 방송사들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 감독 역시 "이미 다 잃을 각오를 하고 시작한 일"이라며 한 발짝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truetaste)에 올린 글을 통해 ''너희가 스스로 변화하길 거부하면 내가 바꿔주겠다. 이제 람보 모드로 변환한다. 악당들은 각오해라.''라며 오히려 익살스럽게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김재환 감독과 거대 방송사들의 힘겨루기를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연상된다. 도대체 이런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이유가 뭘까? 그의 대답은 쿨했다.
"아무도 문제 제기를 안 할 것 같아서요!"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처럼 조용하고 단정한 스타일의 김재호 감독은 소위 ''갑''으로 불리는 MBC 공채 PD 출신이다.
현재 독립제작사인 더 피플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어떤 질문이든지 거침없이 대답했다. 답변은 구체적이면서도 논리적이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미디어 3부작''이 상당히 치밀하게 기획되고 준비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음은 김재환 감독과의 일문일답.
▶ 우여곡절 끝에 ''트루맛쇼''가 개봉됐다. 소감은? = 지난 4월29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방영이 된 후 관련 기사만 400여 건이 나왔다. MBC의 상영금지가처분신청도 있었고 여러모로 바빴다. 아무튼, 발리에서 쓰나미를 만났는데 갑자기 눈을 떠보니 부산 앞바다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종편PP 등 4개의 거대 상업방송 출현을 앞둔 시점이어서 시기적으로도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는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핵심은 뭔가? = 방송사의 맛집 프로그램에는 돈과 권력을 매개로 한 온갖 욕망이 교차하고 있다. 그래서 가짜 맛집, 가짜 주인, 가짜 손님, 가짜 메뉴들이 판을 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능력을 잃고 방송에 중독돼 멍해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돈과 권력을 위해 시청자를 중독 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를 분명히 구별해내야 한다. 그래서 중독에서 깨어나야 하고 가면을 벗겨 내야 한다는 것이다.
▶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 =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시청자들에게 모두 책임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방송사가 져야 한다. 외주제작사에 제작비의 50~90%만 지급하고 프로그램 제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콘텐츠의 저작권도 가져간다. 제작사의 입장에선 양심을 팔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잔인한 선택에 내몰리는 셈이다. 시청자들도 합리적인 미디어 소비자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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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사들은 뜻밖에 조용하다. 왜 그런가? = 방송사들이 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문제를 뉴스 등에서 마치 주문처럼 외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와 협력사만큼 착취와 증오의 관계도 없다. 그분들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은 비록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늘 그랬듯이 이 폭풍우는 짧게 지나가고 결국 아무런 변화도 없으리라 판단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주가가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팔면 주가는 실제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나는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한국에서 독립제작사를 차려도 ''협찬브로커''로 열심히 뛰지 않으면, 직원 월급 주기도 쉽지 않다. 방송계가 날 선 크리에이티브(creative)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오히려 ''브로커 같은 PD''만 양산하고 있다.
▶ 방송사의 반응은? = 영화가 개봉되면서 일단 ''침묵 모드''로 들어간 것 같다.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마 영화에 대한 관객 반응을 먼저 살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MBC는 자신이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소송으로 앞으로 두고두고 발목이 잡힐 것이다.
지난 30일 법정에서 담당 판사는 ''주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당하는 처지인 방송사가 처음으로 영화사에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이런 사례가 문화방송에도 판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봤는가''라고 말했다. 앞으로 대기업이나 정치권력이 MBC의 고발프로그램을 상대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해 올 때 이에 대한 반박논리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아주 나쁜 선례가 된 것이다.
▶ 방송사에 대해 원하는 것은 뭔가?= 깨끗하게 사과하고 제작사가 양심을 팔지 않도록 제작비 올리고 저작권 나누면 된다. 하지만, 아직 시청자에 대한 어떤 형태의 사과조차 없다. 지상파 PD 출신인 나는 어떻게 보면 내부고발자다.
방송 3사는 그동안 내부고발자를 다루는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이런 내부고발자들이 필요하다. 또 내부고발자는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 이 정도도 용인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방송해왔다.
하지만, 자신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자 전혀 다른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 언론''과 ''진보적 노동운동''을 주장하는 언론노조나 방송 3사 노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트루맛쇼는 철저한 역할 바꾸기 게임인 ''역지사지 퍼포먼스''다.
항상 찌르기만 하던 방송사들이 한번 당해보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자신을 찌른 그 상대에 대해서는 어떤 톨레랑스를 보여줄까? 유심히 지켜보시라. 쇼는 영화관 밖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 ''트루맛쇼''가 뜨면서 연예인 남희석 씨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 = 남희석 씨는 이미 2009년 5월에 한 스포츠신문에 기고문을 통해 ''불량 양심으로 새로 문을 연 식당을 자신이 즐겨 찾는 유명 맛집으로 둔갑시키는 거짓방송을 했다''고 고백했다.
남이 찔러서가 아니라 자기의 부끄러운 방송을 스스로 고백한 연예인은 사실 거의 없다. 이 글을 읽고 ''와 대단하다''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런 연예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트루맛쇼''에 본의 아니게 출연 당한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이 있다. 무척 억울할 거다. 죄송하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초상권이나 저작권 보호라는 금기를 깨지 않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 주철환 PD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는 대중에 빚진 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출연한 영화나 음반 홍보에 도움이 되더라도 ''스타의 맛집'' 가짜 단골 배역을 포기할 줄 알아야 진짜 스타다.
▶ 거대방송사와 잘 지내야 회사가 운영되지 않겠는가?= 내가 대표로 있는 더 피플의 매출 가운데 70%는 MBC로부터 나온다. 당장은 조용하지만, 우리가 맡은 MBC 외주제작 프로그램들은 앞으로 상당 부분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차피 각오한 일이다.
''거대 방송사가 우리를 이렇게 괴롭혀요~''와 같은 약자 마케팅은 전혀 쓸 계획이 없다. 어머니는 나에게 늘 용감하게 살라고 하셨다.
하지만, 너무 나서지 말라고도 하셨다. 이 두 가지가 헷갈리면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살라고 가르치셨다. 버둥거려봐야 인생 별것 없다고 말이다. 때로는 사방에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쿨'' 하게 끝까지 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