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왕 록펠러는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해 준 것이 아니라 자선가의 삶을 살도록 했다. 부자 아버지를 두지 못했다며 늘 허름한 호텔에 머물던 록펠러 다운 철학을 실천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대학과 교회 등을 수없이 지어 헌납했다. 그 자신이 직접 아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가르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家가 형제간 유산 다툼으로 시끄럽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 회장은 지난 17일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 푼도 내 줄 생각이 없다. 상대(이맹희·숙희) 쪽이 소송을 하면 끝까지 대응해서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라도 갈 것이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지난 2월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에 이어 3월 누나인 이숙희씨가 부친 이병철 회장의 유산을 나눠달라며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후 첫 공식 발언이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소송금액만 1조원에 달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재벌가에서 경영권과 유산 등을 놓고 이전투구를 하는 모습은 볼썽사나운 게 사실이다. 상상도 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돈''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니만큼 더욱 치열하고 때론 피도 눈물도 없다.
이렇듯 한국 재벌가에서 집안싸움을 벌이는 일은 아주 흔하다. 삼성 외에도 현대, 롯데, 금호아시아나, 한진, 두산, 한화, 대림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든 재벌가들이 경영권과 유산 등을 둘러싸고 서로 편을 갈라 다툼을 벌였다. 일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반면 기업의 역사가 우리보다 오래된 서양은 소유와 경영이 이미 정리됐거나 분명한 철학을 갖고 운영되기 때문에 송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천한 역사를 가진 한국 재벌들은 이른바 ''피비린내 나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영권 혹은 유산을 놓고 재벌가에서 다툼이 잦은 것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총수를 중심으로 기업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 집중되다보니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창업 1세대들에게 기업을 물려받는 와중에 다툼이 종종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자가 아닌 다른 형제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때는 더욱 심각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골육상잔이 따로 없다.
개중에는 1세대 창업주가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형제들끼리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을 벌인다. 흡사 태종 이방원이 조선 건국초기 왕권 강화를 위해 형제는 물론 일가친척까지 몰살했던 일들이 떠오를 정도다.
삼성家는 1970년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창업주인 故이병철 회장과 장남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사이에 깊은 갈등의 골이 패였다. 이병철 회장이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을 그룹 후계자로 낙점하자 이맹희 회장과 차남인 故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이 반발하며 갈등이 불거졌다.
하지만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폐암으로 별세한 이후 두 형제는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이맹희 전 회장은 지금까지도 야인생활을 하고 있고, 이창희 회장 역시 새한미디어를 세워 분가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숙질간 전쟁''으로 확전됐다. 이건희 회장이 형인 이맹희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현 CJ회장과도 경영권 다툼을 벌인 것이다. 이병철 회장이 삼성家 장손인 이재현 회장 몫으로 남겨둔 제일제당의 계열 분리 과정에서 숙질간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1994년 10월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측근인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 겸 부사장으로 임명한다. 이학수 부사장은 제일제당에 무혈입성한 후 이재현 당시 상무와 손경식 회장을 이사회 멤버에서 제외하려 했다.
제일제당을 빼앗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판단한 이 상무는 삼촌인 이건희 회장과 경영권 수성을 위해 피말리는 전쟁을 벌였다.
최근 삼성이 이재현 회장을 미행해 문제가 됐었는데,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낯 뜨거운 장면도 연출됐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재현 회장 이웃집 옥상에 삼성이 아예 CCTV를 설치해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감시한 것이다.
CCTV를 설치한 것을 알게 된 이재현 회장이 당시 강하게 항의해 철거됐지만 이 사건은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경영권을 노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응하는 지 알려준 ''유명한'' 사건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겪은 제일제당은 3년간의 ''숙질간의 전쟁'' 끝에 1997년 결국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계열 분리됐다.
하지만 이번 상속 소송을 계기로 숙질간 전쟁이 다시금 수면위로 올라왔다. 아마도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동생(이건희)에게 밀린 형(이맹희)과 그룹 경영권을 차지한 동생 사이의 잠재된 갈등이 깊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리전 성격까지 더해지며 진한 앙금이 남은 숙질간 전쟁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현대家 역시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에서 삼성家에 빠지지 않는다. 다른 점이라면 수면아래 침잠해 있으면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는 형제간은 물론 시숙 간 다툼도 벌어졌고, 여지는 아직도 남아있다.
맨 처음 싸움은 재계는 물론 세간에 익히 알려진 ''왕자의 난''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그룹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던 창업주 故정주영 명예회장의 둘째아들인 정몽구 회장과 다섯째인 故정몽헌 회장이 후계권을 두고 다툰 것을 말한다. 이들은 다툼 끝에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으로 쪼개졌다. 정몽헌 회장은 이후 현대 계동사옥 자신의 집무실에서 대북사업 비자금 사건으로 투신자살해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2003년에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故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의 현대엘레베이터 경영권을 채가려 해 이른바 ''시숙의 난''을 촉발시켰다.
이 문제는 지난해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던 당시까지 영향을 끼쳤다. 현대건설이 갖고 있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지분이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가면 현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그룹으로 넘어갔던 현대건설을 억지로 빼내 먹어버린 현대차그룹에 화가 난 현 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나중에는 맞소송을 하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연출했다.
두산그룹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형제경영''이라는 외부에서 보기에 좋은 전통을 갖고 있었지만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퇴색됐다.
발단은 창업 109주년이던 2005년 7월18일 故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박용성 신임 회장이 취임하면서 부터다. 당시 형제경영의 전통을 무난히 잇는 듯 했지만 며칠 후 박용오 전 회장이 동생의 취임에 반발해 이사회 하루 전에 ''두산 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형제의 난''의 시작이었다.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경영권 다툼은 결국 양쪽의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오너 일가가 분식회계 등을 통해 10여 년간 326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유산배분 비율대로 나눠가진 것이 들통 났다.
오너 일가는 이 돈으로 세금을 내거나 부동산 구입, 사찰 시주를 하기도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충격을 던져줬다.
문제는 장기간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검찰은 관련자 3명을 모두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 한 점이다. 당연히 시민단체와 사회적 반발을 샀다.
당시 불구속 이유로 회자된 것이 두산 오너형제들을 구속했을 때 안기부 도청사건으로 조사 대상이던 이건희 회장의 신변 처리를 두고 후폭풍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의혹도 있었다.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박용오 전 회장은 그룹은 물론 가문에서도 제명됐으며 재계에서는 승자 없는 ''형제의 난''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박 전 회장은 형제의 난 이후 2008년 4월 성지건설 회장에 오르며 재기를 노렸으나 자금 압박과 심리적 스트레스 등을 견디지 못하고 2009년 11월4일 자택에서 자살하고 만다.
한진그룹은 계열분리가 끝난 상태에서도 형제간 법정공방을 벌였다. 2002년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 타계 이후 유산배분을 놓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故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등이 다툰 것이다.
다툼의 불똥은 조중훈 회장의 유언장 진위 검증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성된 유언장이 의심스럽다며 진위 여부를 제기한 것이다. 돈 앞에는 형제도, 핏줄도 없다는 속설을 증명해 줬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박삼구, 박찬구 회장이 경영권을 두고 형제의 난을 일으켜 그룹이 쪼개졌다. 지난해 4월에도 박찬구 회장에 대한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놓고 형제간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금호家는 박삼구 회장 그늘 아래인 금호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과 박찬구 회장 진영인 금호석유화학, 금호PMB화학, 금호폴리켐, 금호개발상사 등으로 나뉜 상황이다.
한화그룹도 계열분리 와중에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인 김승연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진행형인 경우도 있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조사 중인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역시 경영권은 정리됐지만 형제와 사촌형제간 계열 분리가 끝나지 않아 다툼의 여지가 살아있다.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의 아들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계열분리 여부가 쟁점이다.
이밖에 대림그룹은 배다른 삼촌과 조카 사이인 이재우 대림통상 회장과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숙질간 전쟁''을 벌였다. 파라다이스그룹도 생모가 다른 자녀끼리 법정 싸움을 벌였다.
대한전선그룹은 설경동 창업주의 후처 자녀인 故설원량 회장이 그룹을 이어받자 이복형제들이 반발하면서 부자간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다.
동아제약은 강신호 회장이 본처와 이혼하면서 부자간 갈등이 증폭됐다. 강 회장이 본처 소생인 장남과 차남을 배제하고 후처 자식인 3남과 4남을 중심으로 후계구도 정비에 나서자 장남 강문석 수석무역 회장이 강 회장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부자간 경영권 분쟁은 2004년부터 5년간 이어지며 형제간 싸움을 넘어 부자간 싸움으로 번졌었다.
한라그룹도 故정인영 명예회장의 장남과 차남인 정몽국-몽원씨 사이에 재산 분쟁을 겪었다. 장남인 몽국씨는 1989년부터 한라그룹 부회장을 했지만 1992년에 동생인 몽원씨가 부회장에 오르자 1995년 초 경영에서 손을 떼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몽원씨는 1997년 1월 회장 자리에 올랐다.
형제간 갈등이 발발한 것은 한라그룹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당시 정몽원 회장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대부분의 계열사를 팔아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몽원 회장이 형이 갖고 있던 한라콘크리트 주식도 함께 팔아 형의 분노를 샀다.
결국 장남인 몽국씨가 2003년에 동생을 사문서 위조 및 행사혐의로 고소하고 주식반환 청구소송을 내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에 반해 잡음 없이 무난한 분가를 이뤄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범 LG家''다. LG로 한데 묶여있던 LG가는 LG, GS, LS 등 세 갈래로 분리되는 와중에도 큰 잡음 없이 일을 치러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가에서 다툼이 많은 것은 혈연관계 이상의 물질적 욕구 본능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며 "기업의 역사가 어리고 창업주의 경영철학이 후계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상황도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