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준 검사 뇌물수수 사건과 전모 검사의 피의자 성추문 사건으로 온 몸에 생채기가 나고 피부가 짓무르는 것 같았는데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의 정면충돌 사태를 보니 심장과 폐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의 정면충돌 현상을 보면서 검찰의 검사장급 간부가 한 말이다. 검찰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 ''엎친 데 덮친 격''이라거나 ''설상가상'', ''검찰사장 초유의 일''이라는 말들이 나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한 마디로 표현 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 검찰총장과 중수부장 충돌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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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의 정면충돌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검찰로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진 형국이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은 MB정부 들어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검사다.
고려대 출신으로 검찰 내 고대 인맥의 좌장격인 한상대 검찰총장은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뒤 대망의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최재경 중수부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사법시험 동기들이 지방으로 돌 동안 법무부 기조실장을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영전에 영전을 거듭했다.
각자 MB정부 최대 수혜자들이었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리자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김광준 검사의 금품수수 사건에 이어 전 모 검사의 성추문 사건으로 위기가 닥치자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날 생각은 하지 않고 검찰총장 퇴진을 제외한 검찰개혁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20년 전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처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한 총장이 ''한상대 빼고 다 바꿔''라며 검찰 개혁방안을 추진하자 검찰 내 격한 반발을 불러왔다.
검찰 개혁은 한상대 총장의 사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한 총장은 자신의 퇴진을 제외함으로써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수부 폐지와 감찰본부 확대개편 등등의 안이 제시됐다.
결국 한상대 검찰총장이 ''중수부 폐지''를 개혁방안 중 하나로 들고 나오자 최재경 중수부장이 반발했고, 한 총장이 최재경 중부수장 공개 감찰이라는 강수를 두자 최재경 중수부장은 한 총장 퇴진을 건의하니까 감찰에 나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검찰총장을 들이받는 상황이 빚어졌다.
한상대 검찰총장의 무리수가 최재경 중수부장의 공개반발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검찰 내에서도 ''자업자득''이라며 한 총장의 무리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지만 최재경 중수부장의 공개적인 반발도 검찰 내 상식을 넘어선 것이다. 총장이 감찰을 지시하면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참모인 중수부장이 검찰총장의 퇴진을 공개 거론하고 나선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다.
◈ 한상대 vs 최재경, 고대 vs TK 정면충돌?그렇다면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의 정면충돌은 왜 일어난 것일까? 단순히 일시적인 의견 충돌로 빚어진 현상일까?
검찰 내 진단은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충돌은 검찰과 중수부장의 관계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검찰 내 최대 세력인 TK와 고대 세력이 정면충돌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 세력을 대표하는 한 총장이 최재경 중수부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태를 해결하려하자 TK 세력이 조직적으로 한상대 흔들기에 나섰다는 여러 징후들이 나타났다. 거꾸로 한상대 총장을 밀어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는 설들이 나돌았다.
그런 와중에 권재진 법무장관이 28일 밤늦게 최재경 중수부장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의 ''특별지시''를 내렸다.
권 장관은 최재경 중수부장의 감찰과 관련해 "검찰에서 진행하고 있는 감찰 또는 수사는 적법절차에 따라 수행하라"고 지시했고 검찰총장이 주도해온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는 "검찰 개혁과 관련된 논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와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심도 있고 신중하게 다뤄야 할 것"이라며 한 총장의 조치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MB정부 들어 검찰에서 TK와 고대 출신들이 대체로 승승장구 했지만 고대보다는 TK가 더 압도적이었다. 검찰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이 TK 출신이다.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한 총장과 최 중수부장의 충돌에서 역학관계상 TK의 압승으로 마무리 됐다"고 풀이했다. 한 총장이 뭔가 크게 착각한 것 같다는 얘기도 들렸다. 결국 한 총장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상대 검찰총장이 잘못이 많고 따라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일종의 파워게임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 검찰 개혁 해법은?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은 철저하게 망가졌다.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이 문제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은 모두 임기를 지키지 못하고 중도에 물러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한 뒤 청와대가 지명한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는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진사퇴했고 김준규 검찰총장은 임기를 거의 채웠지만 검경수사권 수사권 합의 파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한상대 검찰총장도 사표를 내 청와대의 신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이미 총장으로서 권위와 신뢰를 모두 잃었다. 청와대가 사표를 수리하건 안하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이 모두 물러날 것을 요구한 뒤여서 총장으로서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가 원칙적으로 문제가 있었음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물러날 경우 권재진 법무장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민정수석으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권재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될 때부터 논란이 많았지만 권 장관이 검찰에 음으로 양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만큼 이번 기회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퇴직한 전직 검사장급 출신 한 법조인은 "검찰이 이처럼 망가진 근본적인 책임은검찰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 이명박 대통령이 져야하며, 이를 앞장서서 방조한 권재진 법무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정치권이 검찰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지만 검찰도 권력에 순치돼 출세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BestNocut_R]
검찰 개혁의 핵심 해법은 무소불위의 힘을 견제할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도 검찰총장의 일방적 지시를 견제할 제도가 확립되어야 하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같은 검찰과 경쟁하고 견제할 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내에서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사회는 이미 다양화 다극화 됐는데 형사사법시스템만 과거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진단과 비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