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남북정상회담 발췌록'이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나는 부분이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발췌록을 만들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발췌록의 존재는 지난해 대선 직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처음으로 공개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도 지난 6월 24일 국정원이 발췌록을 공개하기 전에는 발췌록을 본 사실이 없다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전 수석도 대화록 원문은 봤지만 발췌록은 본 사실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은 대화록과
거의 일치한다. 김무성 의원이 의총에서 대화록을 봤다고 했는데 대화록 원문을 본 것인지 아니면 발췌록을 본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화록 전문이 2008년 1월에 생산됐다는 것도 의문이다. 정상회담 대화록은 2007년 정상회담 직후 작성됐지만 2008년 1월에 대화록이 왜 다시 만들어졌는지 그 점도 밝혀져야 한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남북정상회담 발췌록, 누가 왜 만들었을까?" 라는 주제로 정상회담 회의록의 작성과 유출 그리고 발췌본과 관련된 의문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언제 작성된 것이냐?=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내용을 정리한 게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정상회담이 끝나고 1주일 이내에 대화록을 만들었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조명균 당시 안보정책비서관과 둘이서 대화록을 만들었다"며 "만든 시기는 10월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였다고 확인했다.
문재인 의원은 트위터에 "정상회담대화록은 기록자로 배석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조명균)이 녹음해 온 파일과 기록메모에 의해 작성됐다"며 "그런데 국정기록비서관실에서 녹취를 위해 들어보니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잡음제거 등의 장비와 기술을 갖춘 국정원에 파일 등을 넘겨 대화록을 작성케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녹음 상태가 좋지 않다보니 녹취록을 남기는 대신 녹음과 메모를 참고해서 대화록이 만들어졌다.
▶ 그런데 지난달 24일 국가정보원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제공하면서 공개된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의 표지를 보면 2008년 1월에 생산한 것으로 나와 있다. 어떻게 된 것이냐?
김만복 전 국정원장. (자료사진)
= 여기서부터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1급 비밀로 지정돼 있는데 2008년 1월 이명박 정부 출범직전 인수위 시절에 새로운 '대화록'이 만들어졌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등장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대화록은 열람은 가능하지만 복사를 하거나 메모를 하거나 공개를 할 경우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2008년 1월 정상회담 대화록을 만든 곳은 국가정보원이다. 그런데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2008년 1월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만들어진 것은 원장인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그거는 아마도 줄서기 하는 놈들이 그때 만들어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나도 몰래(국정원장 몰래) 갖다 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며 "그걸 왜 만들었겠나? 사용하려고 만들었겠지?"라고 반문했다.
김 전 원장은 또 대화록 전문 표지에 기재된 "<2008년 1월(생산)> 이런 표시는 국정원 정식문서에는 없는 표시"라고 덧붙였다.
▶ 그렇다면 2007년 10월에 만들어진 '대화록'과 이번에 공개된 2008년 1월에 만들어진 '대화록'은 다른 거냐? = 그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같다'거나 '다르다'고 말하지 못한다. 비교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언론에 공개된 내용들을 보니 기억이 난다"며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의원은 어제(6월 30일) 긴급 성명서를 통해 "국가기록원에 있는 기록을 열람해서 NLL 포기 논란을 둘러싼 혼란과 국론 분열을 끝낼 것을 새누리당에 제안한다"며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이라면 사과는 물론이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의원의 발언은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 전문이 '왜곡'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서 진위를 가리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미 공개된 정상회담 대화록의 전문이 미묘한 부분을 왜곡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는 엄청난 후폭풍이 일 사안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의원도 "공개된 대화록에 내용의 왜곡이나 조작이 있다면 더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따라서 그 대화록이 누구에 의해, 언제,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내용의 왜곡이나 조작이 없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그런데 2008년 1월 만들어진 대화록이 김만복 원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지 않느냐?=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비서관을 지낸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앞서 김만복 전 원장이 언급한 내용과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김 전 원장은 "국정원에서 이명박 대선캠프로 줄 서기한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문헌 의원은 "2008년 1월에 만들어진 대화록은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헌 의원은 "2007년에 만들어진 대화록2부 중 1부는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국가기록원에 있고 국정원에 있던 나머지 1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사라졌고 2008년 1월에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해 다시 생산됐다"고 말했다.
정문헌 의원은 "김만복 전 원장은 자신도 모르게 줄서기 한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면서 "아무리 정권이 넘어갔다고 해도 현직 국정원장 모르게 1급 비밀이 취급되지는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1급 비밀을 외부에 유출했다면 7년 이상의 중형을 받게 되는데 국정원 내부의 누가 그런 일을 했겠느냐?"고 의문을 나타냈다.
정문헌 의원은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 시절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MB정부에 줄을 대려 한다는 등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돌았다는 걸 들었다"라고 전했다. 정 의원의 발언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대화록' 논란과 관련해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정문헌 의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자신은 지시한 일이 없다"며
"자신도 2008년 1월(생산)에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2008년 1월에 만들어진 대화록을 누가 왜 누구의 지시로 만들었는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정상회담 대화록은 1급 비밀이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질 수도 없고 기존에 만들어진 대화록이 왜곡되거나 가공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화록이 원본과 관계없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맞는다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 오늘 주제는 '대화록'이 아니라 '발췌록'아니냐? 왜 '발췌록'을 주제로 했나?= 그렇다. 앞서 설명한대로 공개된 대화록이 원본과 동일한지 아닌지 의문이다. 그런데 '대화록' 전문과 함께 공개된 '발췌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과장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부분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발췌록에서 왜곡된 발언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정상회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저자세를 보였다는 부분이 논란이 되는데 전문을 보면 노 대통령은 자신을 '나'라고 칭하지만, 발췌본에는 2곳에서 '나'가 '저'로 바뀌어 있다. '나는 큰 기대를'이라고 한 것을 '‘저는 큰 기대를'이라고 했다고 나와 있고 '나도 관심이 많은'이 '저도 관심이 많은'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이라고 칭한 부분도 세 곳이나 '김정일 위원장님'으로 바뀌어 있다.
발췌본만 볼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원장님'이라고 칭하고 대통령 자신을 '저'로 낮추는 것으로 보여 저자세니 굴욕이니 하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하지 않은 표현을 덧붙인 곳도 있다.
대화록 전문에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할라구 합니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발췌본에는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할라구 합니다. 뒤로 빼고 하는데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뒤로 빼고 하는데'는 하지 않은 표현이다. 전문에 "장관급회담도 안 할란다 이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발췌본에는 "장관급회담도 안 할란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본 적도 있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바뀐다.
NLL과 관련해서 발췌본은 'NLL을 바꿔야 한다'는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대화록 전문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일관되게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를 설득하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라 그건 옛날 기본 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라며 구체적으로 NLL을 근거해 협의하자는 언급을 하고 있지만 발췌본은 이런 발언은 빼고 작성했다.
어딘가 의도적이라는 의혹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 그렇다면 그 발췌본은 누가 만들었나?= 국가정보원이 만든 건 확실한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 부분이 확인된다면 '정상회담 대화록'이 어떻게 공개됐고 어떻게 이용됐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정상회담 대화록을 그동안 작성하거나 열람했던 여러 명에게 확인을 해봤다. 그런데 발췌본은 존재 사실을 몰랐다고 말한다.
먼저 대화록을 직접 작성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김 전 원장은 조명균 당시 비서관과 대화록을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다)은 발췌본의 존재자체를 몰랐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시절인 2009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임명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2009년에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봤다"고 확인을 하면서도 "발췌본의 존재 사실은 국정원이 공개하기 전에는 몰랐고 그동안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2010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임명된 천영우 전 수석은 "2010년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했지만 발췌본은 있는 줄도 몰랐고 읽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선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이 대화록을 구해서 읽었다고 말했는데 이때 읽은 대화록이 전문을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발췌본을 얘기하는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권영세 당시 선거대책본부 상황실장의 경우도 대화록을 언급하는데 이 대화록이 전문을 얘기하는 것인지 발췌본을 언급하는 것인지는 확인을 해야 하는 대목이다.
▶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인이 안 되는 것이냐?= 일단 만든시기는 2009년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이후임이 분명해 보인다.
새누리당 서상기, 정문헌 의원.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정상회담록 발췌본'이 2009년 원세훈 원장 취임직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문헌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0.4 정상회담 1주년에 즈음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자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록을 가져와 보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고 들었다. '북방한계선(NLL) 발언' 등이 담긴 발췌록 보고서가 올라갔다.(정 의원은 당시에는 발췌록이란 말이 없었고 요약된 보고서일 것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작성 시점은 대화록이 2급비밀 공공기록물로 낮춰진 시점을 고려하면 2009년인 것 같다. 내용을 보고 노한 이 대통령이 원본을 요청했고 보고에 앞서 비서관 신분으로 일독했다. 이후 2010년에도 이 대통령이 발췌록 보고서를 재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용보고를 들어 숙지했다"고 말했다. 정문헌 의원은 이 발언이 맞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과장되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는 대화록 발췌본은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직후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에 정상회담록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거나 비밀 취급이 가능한 국정원 내부인물이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문헌 의원은 "1급비밀은 그 내용을 축약하거나 메모도 허용되지 않는다며 요약보고서(발췌본)가 만들어진 것은 2급비밀로 격하됐기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