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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장마! 물 만난 도심 속 비밀정원 '백사실·수성동 계곡'

여행/레저

    고맙다, 장마! 물 만난 도심 속 비밀정원 '백사실·수성동 계곡'

    [서울의 재발견] 장마 속 진가! 도심 속 청정계곡의 재발견

    장마가 고마운 서울 도심 한복판 비밀 휴양지가 있다. 장마철 우기에 진짜 계곡다운 모습을 발휘하는 '서울성곽 밑의 청정 계곡', 수성동 계곡과 백사실 계곡이 그것. 지루한 장맛비와 불볕더위가 번갈아 기승을 부리는 지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비로소 그 절정의 진가를 발휘하는 계곡이다.

    서울한양도성이 휘감아 도는 서울 도심 네 개의 산, 내사산(內四山) 중 군사보호지역이자 개발제한구역으로 특히 사람의 때를 많이 타지 않은 북악산과 인왕산은 도심 한복판에서 있다고 믿기 힘든 청정 자연의 모습을 산자락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도심 속 청정 계곡인 인왕산 수성동 계곡과 북악산 백사실 계곡이다. 조선시대부터 빼어난 산수 절경으로 안평대군의 집과 추사 김정희의 별서가 각각 있던 한양도성 최고 명승지의 일부다.

    1년 전체 강우량 중 절반 가량이 장마철에 집중되는 우리 기후 여건상, 이맘때가 아니면 이들 계곡에서 물다운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조선시대 청계천도 장마철 우기가 아니면 건천이 돼버렸다.

    이런 기후에서 진짜 계곡다운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장맛비와 불볕더위가 하루씩 교대하듯 찾아오는 요즘, 장마가 잠시 쉬어가는 날 가벼운 마음을 안고 도심 숲 청정 계곡으로 떠나보자.


     

    ◈ 수성동 계곡

    겸재 정선이 북악산과 인왕산의 경승 8경을 그려 담은 <장동팔경첩> 중 화폭의 하나가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의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다. 계곡의 물소리가 크고 맑아 동네 이름이 조선시대에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렸고,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성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된 곳이다.

    안평대군의 집(비해당)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의 경관이 비교적 잘 간직돼 있어서, 계곡과 돌다리 등이 2010년에 서울시 기념물 31호 문화재로 지정됐다. 특히 '기린교'라 불리는 계곡 아래 돌다리는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 보존된 돌다리이자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로서,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이곳 수성동 계곡을 배경으로 추사 김정희의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 등 많은 시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문학과 시가 조선 후기 중인층을 중심으로 시사(詩社 - 시모임)가 결성되고 위항문학(委巷文學 - 골목문학, 중인들의 문학)이 꽃피는 등 그 저변이 확대됐던 본거지도 바로 이곳이다.

     

    수성동 계곡이 겸재 정선의 화폭 모습대로 우리 품에 돌아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1년 7월 11일이다.

    마포 와우아파트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수성동 계곡의 모습이 드러났고 그 경관의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됐다.

    복원 과정에서 암반을 최대한 노출시켜 암석 골짜기의 경관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과거 반환경적인 콘크리트 토목 건축을 반성한다는 의미로 남겨놓은 옥인시범아파트 한동 모습의 일부도 인상적이다.

    아울러 계곡에 소나무 1만 8,477그루와 산사나무, 화살나무, 자귀나무, 개쉬땅나무 등을 심어놓았고, 골짜기 안팎에 계곡 산책길도 잘 정비해놓았다. 시민들이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의 수성동 계곡과 똑같은 위치에서 계곡의 실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정선이 직접 그림을 그린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인 수성동 계곡 초입 광장부에 그림과 실경을 비교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계곡 위쪽으로 올라가면 시원한 그늘 속 계곡물에 발을 담가 담소를 나누기 좋은 비밀 공간들이 곳곳에 나타나고, 도롱뇽, 가재, 개구리, 버들치 등이 서식하는 청계천 발원지가 나온다. 그야말로 생태 청정 지역이다.

    이 계곡 산책길을 걸으며 수성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물소리와 소나무향을 함께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때가 바로 장마철 우기인 지금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서울 도심 전경이 펼쳐지는 도심 숲 계곡에서 신선이 된 듯한 여유를 체험해보면 어떨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 20m 전방에서 마을버스 9번을 타고 서촌 골목을 지나 종점에서 내리면 수성동 계곡이다.

     

    인왕산을 지나는 서울성곽 밑의 수성동 계곡. 이 계곡의 끝 지점에 오르면 인왕산 자락길 나무 데크 계단도 나오고, 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가 올라가는 돌계단도 나온다.

    이 돌계단으로 올라사 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부암동 초입에 서울성곽과 성문인 창의문, 그리고 서울 시내 전경이 펼쳐지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타난다. 수성동 계곡을 즐긴 후 서울성곽도 함께 걸어보자.


    ◈ 백사실 계곡

    종로구 옥인동 인왕산 자락에 수성동 계곡이 있다면,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 자락에는 백사실 계곡이 있다.

     

    오랜 시간 청와대 옆 군사보호구역이자 개발제한구역으로 보존돼왔던 만큼,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깊고 울창하면서 맑고 깨끗한 계곡이다.

    10년전 이 계곡에서 도롱뇽 알주머니 수만 개가 발견됐고, 지금도 이곳에는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도롱뇽과 버들치가 살아간다. 가재도 계곡물 곳곳에서 심심찮게 발견되고 천연기념물인 까막딱따구리가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계곡물 역시 장마철 우기가 돼야 그 계곡다운 멋을 느낄 수 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오솔길이 갈랫길로 나눠지는 숲속 어디를 따라가도 좋다. 계곡물에는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고, 계곡숲은 강원도의 작은 산속에 온 듯한 풍치를 풍긴다.

    이 계곡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사람이 붐비지 않아 조용하다는 것. 호젓하게 바람을 쐬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이들은 흡사 주말이 아닌 조용한 평일 하루 시골로 휴양 온 이들의 모습이다.

     

    백사실 계곡은 조선시대에 '백석동천'으로 불렸다. 여기서 동천이란 '경치가 빼어난 곳, 신선이 사는 별천지와 같은 곳'을 뜻하는 말이다. 백석동천이란 '백악(북악산)의 수려한 산천으로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백사실 계곡의 거대한 바위에는 '백석동천'이라는 암각이 남아있다. 계곡 밑으로 내려가면 'ㄱ'자형 건물터에 십수개의 초석과 주춧돌만 남아 있는 별서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에 이 별서(別墅-별장) 유적이 한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소유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추사 김정희가 터만 남은 백석정 부지를 사들여 새로 건립했다는 것이다.

    이 계곡의 이름이 백사실이라 별서의 주인이 백사 이항복이라는 설이 있는데, 추사 김정희 별서이기 이전에 백사 이항복의 별서였는지는 밝힐 근거가 없다.

     

    종로구는 이 별서 건물터와 정자터 등 유적이 추사 김정희의 것이라고 발표된 것을 토대로 이 시대 정자 건축물을 참조해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도리어 환경 훼손을 낳을 수 있는 어설픈 복원은 안 된다는 이유로 환경단체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곳도 바로 백사실 계곡이다. 그만큼 백사실 계곡이 명승지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생태경관지역으로서의 환경적 가치가 높은 상징적인 장소임을 보여준다.

    번거로운 준비는 필요 없다. 그저 호젓한 마음으로 서울 도심 속 비밀정원으로 불리는 백사실 계곡을 찾아보자. 도심과 자연,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신비한 산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1020, 1711, 7022, 7212번 버스를 타고 세검정초등학교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정류장 오른쪽 다리를 건너 큰길로 나아가지 말고, 편의점 옆 좁은 골목으로 올라가면 백사실 계곡을 밑에서부터 만날 수 있다.

    부암동 환기미술관 골목에서 산모퉁이 카페로 올라가는 길을 걸으면 백사실 계곡을 위에서부터 만날 수 있는 골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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