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초원복집 사건'의 당사자라는 멍에에도 불구하고 오랜 공직 경험과 특유의 정무감각으로 권력의 2인자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 이후 처음 열린 회의였다.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박 대통령 뒤를 이은 사람은 정홍원 총리와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는데 김 실장이 정 총리보다 약간 앞선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의전서열상 대통령 다음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총리지만, 김 실장은 정 총리보다 나이로는 5살, 사법시험 기수로는 12년이나 빠르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 멤버 가운데 한 명이고, 3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박 대통령과의 '거리'나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측면에서 행정부 서열 2위인 정 총리를 능가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 실장은 비서실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국민들 앞에 섰다. '윗분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제안한 단독회담을 여야 원내대표까지 포함하는 5자회담으로 하자는 역제안을 직접 한 것이다.
하루 뒤인 7일에도 비록 이정현 홍보수석이 대신하기는 했지만 김 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뒤 '민주당이 5자회담을 거절해 유감스럽지만, 청와대는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릴 것"이라는 뜻을 전달했다.
전임 허태열 비서실장이 언론 앞에 직접 서거나,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한 것은 딱 한번,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때 대국민사과를 한 게 전부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허 전 실장과 비교해 봐도 임명 사흘만에 이틀 연속으로 언론에 이름을 드러낸 것은 단순한 안살림꾼에 머물지 않고 박 대통령을 정무적으로 보좌하는 기능도 상당 부분 수행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청와대가 입장을 밝혀야 하거나, 야당의 공격이 들어올 때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김 실장이 방패막이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다.
박 대통령의 승인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8명의 수석 비서관 가운데 4명을 새로 임명한 데 따른 후속 인사에도 김 실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청와대에서는 일부 비서관에 대한 교체설과 함께 행정관들에 대한 인사도 준비되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특히 곽상도 전 수석에 의해 진용이 짜여졌던 민정수석실의 개편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김기춘 실장의 등장으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그 아래 실장-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으로 이어지는 위계체계가 더욱 확고해 지고, 김 실장이 '실세 실장', '왕실장'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실장이 위치가 견고해지면 견고해질수록 그를 따라다니는 '공안검사', '초원복집 사건'도 또렷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