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유재학 감독 (사진/아시아선수권 공동취재단)
1998년, 한국 남자농구가 마지막으로 세계 무대에 명함을 내밀었던 해다.
1998년, 유재학 감독이 만 35세의 나이로 프로농구 사령탑에 처음 부임한 해다.
한국 남자농구가 무너져갈 때 유재학 감독은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서서히 명장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다.
지난 7월 초 대만에서 열렸던 2013 윌리엄존스컵 대회.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이 대회에 출전했다가 강한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유재학 대표팀 감독은 먼저 각 나라의 귀화 외국인선수의 위력을 두 눈으로 확인했고 몸싸움이 약한 국내 장신선수들의 경쟁력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농구 경기에서 몸싸움이 안되면 승리할 수 없다.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은 몸싸움에 굉장히 관대하다. 조금만 부딪혀도 휘슬이 불리는 국내 프로농구 규정에 적응된 선수들이 하루 아침에 환골탈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2주 남겨두고 매일 야식을 먹어가며 갑자기 몸을 불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선수들에게 "열심히 부딪히고 버텨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들에게만 모든 부담을 떠넘기지는 않았다. 고민에 빠졌다. 선수들이 살 길을 마련해줘야 했다.
그래서 유재학 감독은 2주라는 짧은 기간에 1-3-1 지역방어를 집중 연습했다.
여기서 센터는 '3'의 중심에 선다. 골대 아래에 위치한 '1'은 골밑을 지킬 뿐 아니라 양쪽 베이스라인 끝을 모두 막아야 한다. 신장과 스피드 더 나아가 빠른 판단력을 가진 선수만이 설 수 있는 자리다.
그 자리를 베테랑 김주성에게 맡겼다. 유재학 감독은 "김주성이 볼의 흐름을 가장 잘 아는 선수"라며 중책을 부여했다. 탁월한 판단이었다.
▲준비된 한국 농구, 아시아 무대를 수놓다효과는 대단했다. 한국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7회 FIBA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 대회 이란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강력한 1-3-1 지역방어를 바탕으로 전반까지 34-30으로 앞서갔다. 이란이 후반 들어 지역방어의 빈 틈을 노리고 들어오면서 결국 역전패를 당했지만 훈련이 성과를 보였다는 것 자체가 소득이었다.
이승준은 "앞으로도 연습한대로만 하면 될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란전은 이미 탄탄했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신뢰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졌지만 그 안에서 성과를 거뒀다.
1-3-1 지역방어는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32-28로 쫓긴 2쿼터 중반 지역방어를 꺼내들어 순식간에 점수차를 두자릿수로 벌렸다. 유재학 감독은 "지역방어로 분위기를 전환한 것이 컸다. 그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유재학 감독을 중심으로 이훈재, 이상범 코치는 철저한 준비로 이번 대회에 임했다. 훈련 내용이 코트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나자 선수들도 신이 났다.
▲유재학 감독, 韓 농구를 16년만에 다시 세계 무대로
코칭스태프는 족집게 과외 선생이었다. 시험에 나올 문제를 정확히 예상해 공부를 시켰다. 시험지를 받아든 학생 즉, 선수들은 자신감을 갖고 임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자신감은 점점 더 커졌다.
큰 그림만 보지 않았다. 세밀하게 파고 들었다. 대표팀은 스위치 수비를 연습하면서도 도움수비가 들어와야 할 타이밍과 위치를 미리 지정해 반복 훈련으로 몸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이는 대표팀의 철저한 준비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개최국 필리핀과의 준결승전에서는 아쉽게 분패했다. 유재학 감독은 "상대가 2대2 공격을 많이 해서 선수들에게 스위치 수비를 하라고 지시했는데 내가 더 강조를 해야했다"며 자책했다. 2만명 관중의 뜨거운 함성이 코트 위 대표팀의 소통을 가로막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은 대만전 승리로 다시 도약했다. 대표팀은 대회 초반부터 대만과의 승부를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 실전 경기를 통해 대만을 대비한 스위치 맨투맨 수비를 집중 연습하기도 했다. 결실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