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은 29일 차기전투기 기종선정 최종후보로 F-15SE를 방위사업청에 올리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사업 재추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차기전투기 사업과 관련, 이번주 언론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배경설명회와 최근 배포한 '차기전투기사업 10문 10답'자료를 통해 이같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는 최근 세 후보 기종 가운데 유일하게 총사업비(8조3천억원) 범위 안에 들어온 F-15SE가 사실상 단독 후보로 거론되면서 F-15SE의 성능을 문제삼아 사업 재검토 여론이 비등하자, 방사청이 그간 추진해온 절차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차기전투기 사업의 재추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방사청은 "차기 전투기 사업은 지금까지 관련 법규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추진했으며, 시험평가, 협상 및 가격입찰 등을 차질없이 수행해왔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방위사업청은 '총사업비 내 진입기종의 선정을 건의하고 사업 재추진 여부는 방위사업추진위에서 최종 결정할 사항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사청은 "명백한 이유없이 사업을 재추진할 경우 일정지연으로 인한 전력공백 심화, 대형사업 지연에 따른 타 신규사업 적기 추진 제한, 그리고 국가 신인도 하락 등 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며 사업 재추진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방사청의 사업 설계 잘못은 없나?방사청이 강조한 대로 '절차적 합리성'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내용적 합리성'에는 문제는 없는 걸까?
기종평가는 크게 가격, 성능, 기술 이전, 연합작전 능력 등 4개분야에 대한 점수를 합산해 종합점수로 결정한다.
즉, 가장 성능 좋은 전투기를 가장 싼 가격에 사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개 기종이 총사업비를 초과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로 인해 다른 두 기종(F-35A나 유로파이터)의 성능이 F-15SE보다 더 좋다 하더라도 이 두 기종은 아예 최종 선정 대상에서 배제됨으로써, 성능 좋은 전투기를 구매하려는 정부의 당초 취지를 살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시험평가 결과, 3개 기종 모두 군의 요구 성능을 충족하여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기종이든 우리 군이 요구하는 차기전투기로서의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F-15SE에 대한 성능, 특히 이 기종의 스텔스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정표수 연세대 항공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신문기고를 통해 "F-15SE가 스텔스 기능 보강을 위해 일부형상을 개조하고 페인트칠을 한다고 하지만 그 효과가 의문이고 오히려 무장능력, 행동반경 등 기본적인 성능마저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은 "스텔스 성능은 전쟁 초기에는 높은 임무 성공율과 생존성을 위해 꼭 필요할 수 있으나, 공중우세 확보 후에는 무장능력과 장거리 작전 능력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며 "스텔스 성능은 여러 주요 성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한,"스텔스기라고 해서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다양한 대스텔스 탐지기술이 개발중이다"라고 밝혔다. 일본 방위성은 중국 · 러시아가 운용할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의 연구· 개발에 착수한다고 일본 NHK가 보도했다.
스텔스 기능이 만능은 아니더라도, 당초 공군이 구매를 절실히 원했던 스텔스 전용으로 개발중인 F-35는 총사업비를 초과해 최종 기종선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로파이터는 기술이전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미들급 전투기를 자체 개발하는 한국형차기전투기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하이급 전투기인 차기전투기사업의 기술이전은 매우 중요하다. 유로파이터가 "한국형차기전투기사업에 직접 투자하겠다"고 한 것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다.
유로파이터 역시 총사업비를 초과해 최종 기종선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격이 절대적인 기준이 됨으로써, 성능이나 기술이전 등 다른 중요하고 매력적인 요소들에 대한 선택 가능성이 차단돼 버린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방위사업청의 사업 설계 잘못 때문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총 8조3천억원의 진실은? 차기전투기사업이 공고되기 두 달 전인 2011년 11월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예산안검토보고서에서 차기전투기사업의 사업비 증가로 인한 사업차질을 예견했다.
이 검토보고서는 "국방연구원이 입찰 참여가 예상되는 3개 기종의 기체와 엔진 예산을 2015년 기준으로 산출한 액수보다 정부산출안이 1조8천억원 모자란다"고 지적했다.
이 검토보고서는 "실제 협상에서 경쟁체제로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으나 정부안과 '타당성 보고서 결론'과 과도한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예견에도 불구하고, 방위사업청은 정부안대로 사업추진을 강행했다. 총사업비 내로 가격인하를 유도하면 가능하리라는 계산이었다.
방위사업청은 "제안요청서에서 '가용재원 범위 내 사업추진'을 명시했고, 사업추진과정에서 국회·언론 등에 지속적으로 '총사업비(8조3천억원)내 추진 원칙'을 천명했다"고 강조했다.
방위사업청이 일관되게 '총사업비 내 추진 원칙'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참여 업체들이 받아들인 감도는 다르다.
또 방위사업청이 내세운 '총사업비 내 추진 원칙'이 일관됐다고 볼 수도 없다. 6월 초에 이용걸 방위사업청장은 기획재정부에 가서 "사업예산을 증액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불가 통보를 받았다.
결국 '총사업비 내 추진'은 최종기종선정에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굳어졌다.
방위사업청은 3개 후보기종과 가계약을 마쳤고, 기종결정평가와 검증을 거쳐 기종결정안을 방위사업추진위에 상정하면, 9월 중에 방추위에서 최종기종을 선정하게 된다.
한편, 방사청은 총사업비 이내인 F-15SE를 방위사업청에 최종후보로 상정할 계획이다. 이제 방추위의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방사청 논리대로 '절차적 합리성'을 존중할 것인가? 성능, 기술 이전 등 종합적인 고려를 한 '내용적 합리성'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