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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늦장대응이 재앙 불렀다"



사건/사고

    "공무원 늦장대응이 재앙 불렀다"

    • 2013-10-17 10:57

    공주사대부고 해병대캠프 사망사고 100일 '숨은 이야기'

    ■ 여성가족부ㆍ태안군청, 사고 막을 수 있는 민원에 '늦장대응'
    ■ 사고발생 일주일 전 여성가족부에 민원인 방문
    "해병대캠프 숙소 초과인원 수용해 위험하다"
    여성가족부, 태안군청에 자료만 요청한 채 6일간 묵묵부답 … 7일째 사고 터져
    사고가 발생한 7월 18일 이후엔 단 3일 만에 민원처리
    ■ 공주사대부고 훈련장소 공유수면 점용ㆍ사용허가 받지 못한 곳
    ■ 사실상 '육지'에 허가 내놓고 훈련은 애먼 곳에서 … 감독당국 뭐했나?

    사고발생 2개월 전.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민원'이 제기됐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고발생 일주일 전. 그 민원을 넣은 이가 정부부처를 직접 찾아가 문제점을 알렸다. 대응은 더뎠고, 그사이 사고가 터졌다. 그렇다. 공주사대부고 해병대 캠프 사망사고는 '인재人災'였다.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오후 4시40분. 하늘엔 구름 한점 없고, 바람은 잔잔했다.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해병대 캠프' 둘째날. 공주사대부고 2학년 재학생 198명은 충남 태안군 안면읍에 있는 백사장해수욕장 인근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던 1조(80명)는 백사장으로 돌아와 구명조끼를 2조(80명)에 건넸다. 1조는 뒤풀이 훈련, 2조는 고무보트를 탈 차례였다. [※ 몸에 이상이 있는 학생 38명은 백사장에서 쉬고 있었다.] 당시 바다에 있던 교관은 3명. 그중 1명은 같은 시기 훈련을 받은 성남시청 담당 교관이었다. 교관 1명이 50명가량의 학생을 맡았다는 것이다. 사고를 방지할 교관수는 그만큼 부족했다.

    민원인의 주장 귀담아들었다면…
    사고는 예고편이 없다. 불시에 몰아쳐 사람을 공격한다. 그날 그때도 그랬다. 순식간에 '너울성 파도'가 밀려왔다. 뒤풀이 훈련을 위해 바다에 있던 1조원 중 30여명이 중심을 잃고 휩쓸렸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 교관 3명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길 2~3분[※ 유가족 측의 추정]. 1조원 중 5명이 보이지 않았고, 다음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처참한 사고였다. 올여름 세상을 침묵에 빠뜨린 '공주사대부고 해병대 캠프사고'의 시작과 끝은 이랬다.

    정황을 보면 너울성 파도가 사고에 영향을 끼친 듯하다. 그러나 그 탓을 '자연의 심술'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무엇보다 캠프운영업체는 국가가 인증한 곳이 아니었다. 바다에 있던 교관 3명 중 2명은 인명구조자격증이 없었다.
    더 심각한 '허점'도 있었다. 사고발생일(7월 18일)로부터 약 2개월 전. 한 주민이 태안군청에 '안면도 해양유스호스텔(이하 해양유스호스텔)'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 해양유스호스텔은 한영TNY가 운영하는 숙박업체다. 한영TNY는 공주사대부고와 해병대캠프 교육계약을 맺은 곳이다.]

     

    민원 이유는 간단했다. "해양유스호스텔이 불법적으로 초과인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병대캠프에 참가하는 교육생은 모두 해양유스호스텔에 묵는다. 교관수는 턱없이 부족한데, 많은 인원을 받아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게 제보의 골자였다. 돈을 벌기 위해 '안전의무'를 뒷방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해양유스호스텔로선 시정명령을 받거나 (청소년시설 관련) 허가ㆍ등록이 취소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태안군청은 고작 과태료만 부과하고 민원업무를 마무리했다. 성난 민원인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에 문제점을 알렸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태안군청이나 여성가족부가 해양유스호스텔에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허가ㆍ등록을 취소했다면 '공주사대부고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사고는 '위험성' 등을 이유로 공유수면 점용ㆍ사용허가가 반려된 곳 인근에서 훈련을 진행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양훈련은 공유수면 점용ㆍ사용허가를 받은 곳에서만 진행해야 한다. 대체 공주사대부고 사망사고 전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The Scoop가 숨은 이야기를 단독 추적했다.

    의문1 | 사고 전 접수된 민원 왜 처리되지 않았나

    '공주사대부고 사망사고' 6개월 전. 해양유스호스텔의 불법운영을 우려 섞인 눈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태안군 주민 김기연(가명ㆍ여ㆍ57)씨였다. 그는 해양유스호스텔의 불법운영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했다. '해병대 캠프' 훈련을 받는 교육생이 이곳에 묵으면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교관은 별로 없는데, 교육생을 초과수용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김씨가 수도권ㆍ충청권에 있는 초ㆍ중ㆍ고등학교에 '해양유스호스텔의 위험성'을 알리는 편지를 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험하니학생을 입소시키지 말라는 취지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김씨가 편지를 보낸 학교 중엔 공주사대부고도 있었다.

    태안군청의 연이은 솜방망이 처벌

    김씨의 말을 들어보자. "… 다른 불법운영 의혹도 많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찾기 어려웠다. 확실하게 눈에 띈 건 수용인원 초과였다. 해양유스호스텔 측은 수용정원보다 많은 인원을 받아 수련시설을 운영하기 일쑤였다. 이는 교육 안전성에 리스크가 있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민원을 넣었다…." 김씨가 처음 민원을 제기한 곳은 태안군청, 시기는 2013년 5월 중순이었다. 태안군청은 김씨에게 이렇게 답했다. "초과인원 수용을 이유로 2012년 6월~2013년 7월 세차례에 걸쳐 각각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상한 행정처리였다. 청소년활동진흥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수련시설을 설치ㆍ운영하는 자(또는 위탁운영단체)가 법 또는 명령을 위반하거나 시설ㆍ안전ㆍ운영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시정을 명할 수 있다. 시정명령을 했음에도 같은 이유로 과태료를 2회 이상 받으면 (지자체장은) 허가 또는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태안군청으로선 과태료를 3회나 받은 해양유스호스텔에 시정명령을 하거나 허가ㆍ등록 취소절차가 진행될 수 있음을 알렸어야 옳다. 태안군청 측은 "청소년활동진흥법 13조1항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조항(13조1항)은 수련시설 등록에 관한 내용(수련시설은 운영하기 전 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등록해야 한다)을 담고 있다. 법ㆍ명령을 위반했을 때 벌칙을 규정한 조항이 아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태안군청으로선 해양유스호스텔에 '솜방망이 처벌'을 한 셈이다.

    태안군청에 민원을 제기한 지 두달 후인 7월 3일. 김씨는 청소년 활동사업의 주무부처 여성가족부에 민원을 넣었다. "법령을 정확하게 적용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취지에서였다. 일주일 만인 7월 10일 여성가족부는 김씨에게 다음과 같은 답을 보냈다.

    여성가족부 "절차대로 민원처리했을 뿐"

    "태안군청은 청소년활동진흥법 제22조(시정명령)에 의거해 취소가능 사유와 조치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 해양유스호스텔의 과태료 부과, 시정명령, 허가ㆍ등록 취소를 비롯한 행정조치 근거와 시행여부는 태안군청에 문의하라." 청소년활동진흥법 13조를 적용해 과태료를 부과한 건 오류지만 자세한 내용은 태안군청에 문의하라는 것이다. 핑퐁게임을 하듯 민원을 태안군청으로 다시 돌려보낸 셈이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 김씨는 답변을 받은 다음날(7월 11일) 여성가족부 청소년활동진흥과를 방문해 담당 공무원을 만났다. 김씨는 "(태안군에서 여성가족부를 찾아가는 데) 반나절가량 걸렸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꼭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직접 방문한 약효는 금세 나타났다. 그 다음날인 7월 12일 여성가족부가 태안군청에 해양유스호스텔의 이용현황자료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 민원인이 받은 답변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6일 후…. 사고가 터졌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태안군청의 회신을 기다리는 사이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발생 후 여성가족부와 태안군청이 취한 조치를 보면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태안군청은 여성가족부가 자료를 요청한 지 11일 후, 사고발생일로부턴 6일 후(7월 23일) 해양유스호스텔의 이용현황자료를 보냈다. 여성가족부의 후속 조치는 신속하게 이뤄졌다.

    태안군청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바로 다음날(7월 24일) 민원인 김씨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해양유스호스텔의 수용정원의 초과사실을 확인했다. 시정명령을 내리고, 허가 또는 등록을 취소하는 게 가능하다." 이 내용은 태안군청에 7월 26일 보내졌다. 태안군청이 해양유스호스텔의 현황자료를 여성가족부에 보내고, 여성가족부가 이 자료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태안군청에 하달할 때까지 걸린 기간은 단 '3일'이었다. 김씨가 여성가족부를 찾아간 다음날(7월 12일)부터 사고발생일(7월 18일)까지 6일 동안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던 여성가족부ㆍ태안군청이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신속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얘기다. 반대로 해석하면 해양유스호스텔의 불법행위를 막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테고, 애먼 학생들의 생사가 갈리지 않았을 게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될 건 없다"고 말했다. 태안군청 측은 "7월 30일자로 인사이동이 있어 담당자가 바뀌었다"며 "현재로서는 어떤 사안인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책임도, 책임질 사람도 없다는 얘기다.

    의문2 | 학생들은 왜 허가 받지 못한 곳에서 훈련했나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해양훈련을 받은 곳은 해양유스호스텔과 백사장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해안가다[그림 참조]. 태안해양경찰서 관계자는 "훈련장소는 안면도 해양유스호스텔 후문에서 200~300m 떨어진 지점"이라며 "방향은 약간 왼쪽"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이 추정하는 훈련장소도 비슷하다. "해양유스호스텔을 등지고 왼쪽 방향으로 160m, 해안가로 300m 이상 들어간 지점이다."

    경찰과 유가족의 주장이 조금 다르지만 '해양유스호스텔을 등지고 왼쪽 방향'인 것은 일치한다. 이는 학생들의 진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The Scoop가 입수한 공주사대부고 2학년 학생들의 진술서 일부분이다. "훈련장소는 바다를 봤을 때 해양유스호스텔보다 왼쪽이었다(훈련을 받은 학생 A)." "숙소(안면도 해양유스호스텔)를 등지고 해안가로 가는 길의 왼편에 앉아 쉬고 있었다. 훈련 중에 아이들이 오른쪽 방향으로 간적은 없었다(훈련 열외학생 B)."

    주목할 점은 이곳이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The Scoop가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통해 단독입수한 문건을 살펴보자. 태안군청은 지난해 3월 16일 대산지방해양항만청ㆍ국립공원관리공단ㆍ해양수산부(당시 국토해양부)에 해양유스호스텔의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허가에 대한 협의를 요청했다.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허가란 바다ㆍ하천ㆍ호수 등 국유의 수류를 사용하기 위해 해당 관리청으로부터 일종의 승인을 받는 것이다.

    이후식 대표 "기성세대가 만든 재앙"

    해양유스호스텔이 공유수면을 점용ㆍ사용하겠다고 요청한 곳은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1296-9지선. 해양유스호스텔에서 150m, 사고지역에선 3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점용ㆍ사용을 허가받았을 경우, 공유수면의 (허용)범위는 반경 800m, 직선거리로 400m다. 사고지역이 해양유스호스텔이 요청한 공유수면 점용ㆍ허가 범위 안에 포함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 허가신청은 반려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랬다. "… 시설물(계류장)이 공익성이나 편의시설이 아니라 개인시설물이었기 때문이다. 사고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위험성 때문에 허가가 반려된 곳의 인근에서 해양교육이 버젓이 진행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또 있다. 허가가 반려된 날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해 7월, 해양유스호스텔은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허가를 다시 신청했다. 위치는 안면읍 창기리 1269-70지선이었다. 이 신청은 8월 23일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곳은 사실상 '육지'다. 바닷물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해양훈련을 할 수 없는 지역이다.

    더구나 이곳은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훈련을 받은 장소로부터 700m나 떨어져 있다. 엉뚱한 곳에 허가를 내놓고 정작 훈련은 다른 데서 진행한 것이다. 엄연한 불법행위다. 수상레저안전법(제58조5항)에 따르면 구역을 벗어나 영업을 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법적인 해양훈련을 막지 않았다. 해양훈련장소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태안해양경찰서 안면파출소가 있었지만 별 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문제를 제기했다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안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 경찰이 수상레저안전법에 따라 제재할 수 있는 것은 고무보트 승선초과, 구명조끼 미착용 두가지다. 허가 받은 공유수면 내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체크하지 않는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 태안군청 관계자는 "전임자가 처리한 일이기 때문에 아는 사실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했다.이후식 공주사대부고 유가족 대표는 이번 사망사고를 "기성세대의 무관심과 잘못에서 비롯된 재앙"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세상 아버지들이 잘못한 건데 어쩌겠는가"라며 가슴을 때렸다.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재앙을 막았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자책이다. 죽은 아들은 말이 없다. 바다는 눈물을 참는 듯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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