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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경제

    학원에 꿈을 저당 잡히다

    청춘 잡는 사교육

     

    교육1번지로 꼽히는 대치동.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 환경도 최고다. 일부 학부모는 자식을 대치동 소재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는다. 과도한 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노후저축을 못 들어도 괜찮다. 잘못된 대치동 '맹모삼천지교'가 불법을 조장하고, 가계를 무너뜨리고 심지어 경제를 왜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례1 영어유치원 3~4세 원생 증가

    2009년 영어몰입교육 바람을 타고 등장한 것이 있다. '영어유치원'이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A영어유치원은 1년 전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입학할 수 있다. 너도나도 몰려드는 이 영어유치원에선 매년 기현상이 벌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학하는 원생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것이다. 아직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한 3~4살의 원생이 치열한 입학경쟁을 뚫고 들어온다. 2009년엔 1~2명에 불과했던 '어린 원생'이 지난해엔 10여명으로 늘었다. 영어유치원 주변에서는 "영어로 옹알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A영어유치원만 그런 게 아니다. 대치동 소재 다른 영어유치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체 원생에서 5살 미만 원생의 비율이 영어유치원마다 다르긴 하지만, 과거보다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뚤어진 교육이 집값 왜곡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제 아이를 대치동의 유명한 영어유치원에 일찌감치 보내려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엔 국제중학교의 폭발적 열기가 한몫 톡톡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중학교는 해외에서 귀국한 학생들이 국내 학교에서 적응하기 위해 개설한 학교다.

    2008년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조기유학의 붐이 일자 이 수요를 국내에서 흡수하기 위해 일반중학교를 국제중학교로 전환하는 정책을 내놨다. 국제중학교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올해 5살인 큰아들을 대치동 소재 영어유치원에 입학시킨 학부모 김진영(가명ㆍ37)씨는 "어려서부터 대치동에서 영어유치원을 다녀야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대치동은 강북 학부모 사이에서 희망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요즘은 중학교 때부터 입시경쟁이 치열하게 시작되기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으면 그야말로 끝"이라며 "일류대로 가는 관문은 영어유치원"이라고 강조했다.

    규모 3.5㎢, 인구 10만여 명에 불과한 대치동. 그러나 교육 열기와 분위기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다. 이 때문인지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대치동 영어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사례2 범죄의 유혹에 빠진 엄마 이야기

    두 아들을 둔 강남구 역삼동 학부모 한순애(가명ㆍ41)씨. 그는 올 초 대치동 소재 유명 C중학교에 큰아들을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꾀했다. 6대 외고 진학률(전체 학생 수의 5.4%)이 전국 1위로 알려진 C중학교였다. 한씨는 "무리를 해서라도 내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 C중학교 옆 아파트에는 절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다.

    이제 전입신고만 하면 큰아들의 C중학교 진학은 떼놓은 당상. 서울 강남교육지원청의 중학교 배정 원칙은 근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주민센터에 전입신고하러 갔을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이것저것 물어볼까 봐서요. 그런데 의외로 쉽더라고요. 신원확인만 했다니까요." 위장전입이 법망을 뒤흔들면서 판을 치는데, 단속의 칼날은 무디기 짝이 없었다는 얘기다.

    위장전입은 엄연한 위법이고 불공정 행위다.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그러나 한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만 한 게 아니지 않느냐'는 불감증이다.

    사회 고위층은 위장전입을 하고도 장관 후보에 버젓이 나오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 거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전력으로 낙마한 고위 공직자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올 1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자녀교육 때문에 분당아파트를 구입하고도 이사하지 않고 4개월여간 본인만 위장전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씨의 불감증은 사회 고위층의 모럴 해저드가 아래로 전이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비뚤어진 교육열이 초래하는 것은 불법만이 아니다. 주변 집값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건설된 지 수십 년이 흐른 대치동 M아파트. 시세는 3.3㎡당 3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아파트의 1, 2단지 가격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매물이 많을 땐(같은 평형대 기준으로) 1단지 가격이 2단지보다 3000만원 가량 비싸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학군 프리미엄 때문이다. 1단지에 사는 초등학생은 대부분 명문 C중학교에 진학한다. 반면 2단지 학생들은 다른 중학교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 1단지 아파트 가격이 2단지보다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군이 집값을 부풀리고 있는 셈이다. 사례는 많다. 대한민국 '부의 상징'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138㎡의 가격은 2009년 7월 20억원이었다. 그런데 완공된 지 20년이 훌쩍 흐른 우성아파트 2차 128㎡ 가격은 24억원에 달했다. 타워팰리스보다 작고 오래됐음에도 4억원가량 비싸던 것이다.

    이유는 역시 학군 프리미엄이다. 우성아파트 2차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은 명문 C중학교에 배정되지만, 타워팰리스는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치동 학군에 부는 이런 현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전세시장에서 학군 프리미엄이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올 1월 은마아파트 76㎡의 전세가는 3억원에서 3억5000만원대로 올랐다.

    도곡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방학 이주수요가 있었다. 그런데다 지난해부터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려고 해 전세물건이 일찌감치 바닥났다"고 전했다.

    타워팰리스의 굴욕, 학군 때문?

    도곡동 B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치동의 학군 프리미엄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대치동은 대치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적인 학군 우수지역은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고 해도 진입하려는 수요가 꾸준히 있기 때문에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전세가의 상승기조가 이어졌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치동이 위장전입으로 몸살을 앓고, 집값에 거품이 잔뜩 끼는 것은 비단 공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대치동의 사교육 열기가 한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는 명실공히 대치동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분석한 자료(2011년 기준)에 따르면 대치동이 속한 강남구의 학원은 1956개에 달한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양천구는 923개, 노원구는 456개다.

     

    양만 많은 게 아니다.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상의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스타급 강사 모셔오기는 기본이고, 각종 교육 서비스도 최고 수준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벌한 '대치 학원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사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럽지 않은 강남3구(강남ㆍ서초ㆍ송파구)와 목동, 중계동 학부모가 아이들을 대치동에 보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남3구ㆍ목동ㆍ중계동의 꼭짓점은 대치동'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대치동에서는 어쩌면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중산층과 서민층이다. 대치동 블루스를 넋 놓고 갔다가는 가계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달했을 때 '그들만의 리그'에 진입하기 위해 사교육비를 무리하게 올리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중견기업 부장인 박모씨의 가계 지출내역을 보자. 그의 아내는 어린이집 교사다. 두 사람이 한달에 벌어오는 수입은 500만~520만원. 각종 세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를 제하면 실제 계좌에 들어오는 것은 440만원 정도다. 중산층 가운데서도 소득이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박씨의 속내는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다달이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09년 아파트를 사면서 빌린 돈의 원리금 상환을 위해 매달 90만원을 낸다. 두 자녀의 학원비로 70만~80만원을 지출한다. 가족 4명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요금 등 통신비에 30만~35만원이 소요되고, 퇴직연금 및 각종 보험으로 나가는 돈은 거짓 60만원이다.

    수입의 60% 이상이 통장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셈이다. 여기에 생활비와 경조사비를 쓰고 나면 저축은 꿈도 꿀 수 없다. 항상 빠듯했다. 박씨는 "지난 여름방학엔 아이들 학원비로 월 120만원을 지출해 가족이 외식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백화점에서 아내의 옷을 산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 구조 분석' 보고서는 비정상적인 서민층의 가계구조를 보여준다. 서민층의 평균 가계소득은 313만원이고, 전체 평균 가계소득은 389만4000원이다. 전체가구에 비해 소득이 70만원 이상 못 미치는 반면 교육지출(서민층 86만8000원, 전체가구 교육비 29만2000원)은 50만원 이상 많았다.

     



    지나친 사교육비 국가경제 흔들어

    지나친 사교육비 지출은 소비를 위축시키고, 노후가 산산조각 날 우려도 있다. 국가경제도 악영향을 받는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산층 가운데 적자가구가 1990년 15.8%에서 2000년 24.2%로 최고조에 달했다가 2010년 23.3%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자영업자 몰락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서민층의 사업소득이나 재산소득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각종 비용은 크게 늘었다. 서민층의 지출 가운데 사교육비ㆍ부채상환ㆍ통신비ㆍ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년간 3배가량 상승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늘어나다 보니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비 여력은 줄었다. 서민층의 전체 지출에서 오락ㆍ문화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3%에서 2000년 4.7%까지 올랐다. 그랬던 것이 2010년 4.1%로 오히려 줄었다. 음식ㆍ숙박비 지출 비중은 2000년 10.1%에서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오락ㆍ문화비 비중을 줄이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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