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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2008년 촛불시위 이후 미국과의 FTA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관세 장벽은 물론 비관세 장벽도 풀었다.
그런데 정작 국내 자동차시장에서는 포드와 크라이슬러 등 미국 브랜드 차량 보다 미국에서 생산된 유럽 브랜드 차량이 활개를 치고 있다.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와 FTA 협상을 진행 중인 캐나다와 중국까지도 미국에 준하는 자동차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유럽 브랜드 차량들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와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보다 한중 FTA가 훨씬 부담스러운 이유이다.
◈ 첫 단추 잘못 꿴 한미 FTA 자동차 분야먼저, 한국은 2012년 3월 한미 FTA 발효와 동시에 미국산 수입 자동차에 대해 관세율을
8%에서 4%로 줄였다.
이어, 발효 4년 뒤인 2016년부터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완전 철폐하기로 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 2.5%를 발효 4년 뒤인 2016년에 한꺼번에 풀기로 했다.
여기에, 비관세 장벽인 자동차 규격과 안전기준도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국내로 들어오는 미국산 자동차는 폭과 길이, 제동장치 등 안전기준이 국내 기준과 맞지 않아도 회사별로 연간 2만5천대까지 수입을 허용한 것이다. 당초 6천5백대에서 크게 늘어난 양이다.
◈ 밀려드는 미국산 벤츠와 BMW한미 FTA로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비관세 장벽이 사라지면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미국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유럽 브랜드 차량의 국내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국내에 들어 온 수입차 가운데
벤츠와 BMW 등 유럽 브랜드의 점유율은 78.4%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11년 74.1%, 지난해 74.3%에 이어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국내 자동차 수입액 50억5,300만 달러 가운데 유럽산 비중은 35억4,200만 달러로 전체의 70.1%로 집계됐다.
지난 2011년 74.8%, 지난해 72.4%와 비교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 브랜드 차량은 늘어나는데 유럽차 수입액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자동차 수입액의 경우 최종 생산지를 바탕으로 산출하기 때문에 유럽 현지에서 직접 수입된 차량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해, 유럽 브랜드 자동차들이 미국에서 생산돼 들어오고 있다는 반증이다.
BMW가 국내에 들여오는 X시리즈는 전량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벤츠 역시 국내 판매중인 ML 라인업 가운데 3종을 미국 공장에서 만든다.폴크스바겐의 인기 세단 파사트 역시 미국산이 국내 수입돼 판매되고 있다.
유럽도 우리나라와 FTA가 체결돼 관세혜택을 받지만 미국에서 생산해 수출할 경우 원가를 낮출 여지가 커 같은 차량이라도 유럽보다는 미국에서 들여오는 걸 선호하는 추세다.
여기서 문제는, 현재 FTA 협상이 진행 중인 캐나다와 중국이 미국의 예를 들어 똑같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우리나라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 Made in china 벤츠, BMW...국내 시장 노린다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분야에서 한미 FTA 보다 한중 FTA가 훨씬 위협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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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중국이 지리적으로 가까워 미국에 비해 물류비용이 저렴하고 인건비도 낮은데 관세와 비관세 장벽마저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완전 개방할 경우 자동차 가격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중국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유럽 브랜드 차량은 물론 혼다와 도요타 등 일본 차량들이 Made in china 딱지를 붙여 지금 보다 최소 1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공략한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자체가 붕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는 연간 1,930만대로 이 가운데 한국과 유럽, 일본, 미국 등 외국 브랜드 차량은 전체의 57.4%인 1,100만대에 이르고 있다.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되는 이들 외국 브랜드 차량들이 한중 FTA가 발효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한중 FTA 자동차 분야...득 보다 실이 많다현재 국내 자동차 업체가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차량은 연간 150~160만대로 중국 자동차 생산량의 13분의 1 수준이다.
이는 중국산 자동차가 연간 10만대 정도만 국내에 수입돼도 시장자체가 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자동차 물량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 수출한 국내산 완성차는 8만대 수준에 불과하고 중국 현지 공장을 통해 134만대를 공급했다.
앞으로 한중 FTA가 발효돼 관세 장벽이 모두 풀리면 우리나라가 직접 중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보다 중국에서 생산된 유럽 브랜드 차량의 국내 수입 물량이 훨씬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대 중국 자동차 수출입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관세 장벽은 풀더라도 비관세 장벽 만큼은 양보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톨릭대 김기찬 교수는 “비관세 장벽은 국가의 기본적인 경제 질서와 소비자 안전을 위해 마련된 기본적인 규범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중국 자체 브랜드는 문제가 없지만, 유럽 브랜드 차량이 직수입될 경우, 국내 자동차 시장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한중 FTA 협상이 미국처럼 진행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한중 FTA 협상에서 자동차 분야 시장개방을 둘러싸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