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2014년 예산도 끝내 해를 넘겨 새해 1월1일에 처리됐다.
여야는 일찌감치 2014년 예산 규모에 합의하고 73개 미쟁점 법안과 국가정보원 개혁법안도 12월31일 낮까지 국회 본회의와 국정원개혁특위에서 각각 처리해놓고도 해마다 반복돼온 예산 늑장처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로써 여야는 지난 2003년 이후 12년째 헌법상 규정된 예산안 처리시한(12월2일)을 지키지 못한 데 이어 다섯 번째(2004년·2009년·2011년·2012년·2013년)로 ‘제야의 종’ 또는 새해 예산을 재연했다. 예산 처리가 해를 넘긴 것은 2012년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다.
지난해 1년을 뜨겁게 달궜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우려됐던 준(準)예산 편성 사태는 피했지만 여야의 마지막 예산 줄다리기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2012년 5월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올해부터는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하루 전인 12월1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당초 왜 예산안 처리의 최대 변수는 국정원 대선개입에서 비롯된 국정원 개혁 문제였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8일 특검과 특위를 요구했고 여야는 12월3일 4자회담에서 국정원 개혁특위 설치에 합의했다.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국정원 개혁특위는 ‘선친답습’ 발언 등에 따른 여당의 보이콧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2월30일 의견 접근을 본 뒤 31일 낮 타결에 성공했다.
여야는 또 핵심 법안 주고받기로 쟁점 법안 협상도 마무리지으며 예산안 처리를 위한 정지작업을 마무리지었다.
새누리당은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 과표 구간 인하와 대기업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 등 부자증세, 쌀 목표가 상향 조정 등도 받아들였다. 민주당 역시 새누리당이 요구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받아주고 전·월세 상한제 및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요구를 철회하면서 맞교환에 응했다.
여의도에서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감돌았지만 돌연 ‘외촉법’이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12월30일 국정원 개혁법안 주요 내용의 법제화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외촉법 처리를 민주당에 요구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고심 끝에 일부 수정 등을 거쳐 이견을 좁혔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12월30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협상에 매달린 끝에 결국 12월31일 오전 최종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날 오후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강경파 의원들이 외촉법 절대 불가입장을 들고 나오며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예산안 처리는 꼬여갔다.
특히, 박영선 법제사법위원장은 "외촉법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재벌 특혜법“이라며 ”이 법 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새누리당이 ‘외촉법 없이는 국정원 개혁법도 없다’며 꿈쩍도 하지 않자 ‘외촉법 처리를 새해 2월 임시국회로 미루자’고 제안했고 이에 새누리당은 ‘그러면 국정원 개혁법안도 2월로 미루고 예산안과 법안들만 오늘 처리하자’고 역제안을 던졌다.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민주당 지도부는 의원들 설득에 온 힘을 쏟았고 이어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신학용, 김진표, 김영환 의원 등이 거들고 나서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돼 김한길 대표에 일임하자는 결론이 났다.
이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 외촉법 등 남은 법안은 예산결산특위와 기획재정위, 산업통상자원위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이중 외촉법은 본회의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법제사법위에서 박영선 위원장 등 민주당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여댱 위원들이 상설특검제 입법을 2월에 처리한다는 합의서를 써줌으로써 결국 문턱을 넘었고 335조8000억원 규모의 2014년 예산안은 찬성 240인, 반대 27인, 기권 18인으로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시간은 2014년 1월1일 새벽 5시15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