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29일(현지시간) 또다시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한 것은 시장이 대체로 예상했던 일이다.
연준의 추가 양적완화 축소 전망에 세계 각국 증시가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남미와 동남아시아 신흥국 금융 시장이 자본 이탈로 흔들리고는 있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자국의 고용·경기 상황에 근거해 돈줄을 계속 죄는 것이다.
연준의 추가 테이퍼링(tapering·자산매입 축소) 결정은 미국 경제가 기대 이상으로 호전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미국의 최근 경기를 그동안 표현했던 것과 달리 좀 더 단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완만하게 또는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expanding at a moderate or modest pace)는 언급이 '호전되고 있다'(picked up)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또 이번 회의의 기초 자료가 됐던 지난해 12월 미국 실업률은 6.7%로, 전달보다 0.3%포인트나 떨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이자 연준이 제로(0%)에 가까운 0∼0.25%의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기준으로 삼은 6.5%에 근접하는 수치다.
같은 달 새 일자리가 7만4천개 늘어 시장에 실망감을 주기는 했지만, 미국 전역에 닥친 혹한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뿐이며 전반적인 노동시장 개선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고 연준은 분석했다.
게다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 거시 지표도 괜찮다.
미국의 3분기 GDP 성장률은 4.1%로, 애초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잠정치(2.8%)보다 대폭 상향 수정됐고 4분기 성장률도 3.2% 안팎으로 기대 이상 선전할 것으로 점쳐졌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런 경기 호조세를 반영해 이달 중순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종전 예상치(2.6%)보다 0.2%포인트 올렸다.
일각에서는 각종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2%) 이내에서 안정돼 인플레이션 부담이 없고 국가 부채 한도 증액 등을 둘러싼 워싱턴DC의 정치권발 불확실성이 잔존하는 데다 양적완화 축소 조치가 신흥국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이번 FOMC 회의에서 출구전략을 한 템포 조절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었다.
연준은 그러나 미국 정치권이 연방정부 예산 등과는 달리 디폴트(채무불이행), 즉 국가부도 사태를 가져올 수도 있는 국가 부채 한도를 놓고는 큰 싸움을 벌이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 것으로 보인다.
또 경기·고용과 물가 등 '미국 경제'가 양적완화 규모 축소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지 해외 변수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님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신흥국을 비롯한 각국의 금융·통화 당국이 미국의 정책 결정에 의존하기보다 자국의 체질을 길러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 셈이다.
아울러 3차례에 걸친 양적완화 등 경기 부양 조치를 숨 가쁘게 제시해온 벤 버냉키 의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임기 내에 양적완화 정책을 어느 정도 거둬들여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회의를 마지막으로 연준을 떠나는 버냉키 의장이 재닛 옐런 차기 의장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옐런 차기 의장도 지난해 12월 및 이번 FOMC 회의에서 채권 매입 축소에 찬성한 것으로 미뤄 지금과 같은 양적완화 출구전략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12월 FOMC 회의 직후 한 기자회견을 통해 "테이퍼링 착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옐런과 긴밀하게 협의했으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