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 개입 관련 수사 결과를 은폐·축소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송은석 기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증인 다수결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판부가 미리 '무죄'를 정해놓고 짜맞추기식으로 판결 논리를 동원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이범균))는 검찰이 김용판 전 청장이 직권을 동원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여러 정황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며 모두 인정을 하지 않았다.
각종 정황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재판부에게 남아 있는 건 증인들의 진술, 즉 간접 증거뿐이었다. 재판부가 '진술의 신빙성'만으로 이 사건의 유·무죄를 따질 수밖에 없는 '프레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진술의 신빙성'과 관련, 재판부는 "검찰이 유력 증거로 제시한 권 과장의 진술을 다른 경찰(수사관) 증인들의 진술을 배척하면서까지 믿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더 단순화시키면 '1명의 진술(권은희 과장)만으로 다른 경찰 10명(수사경찰)의 진술을 뒤집을 수 없다'는 전형적 다수결 논리다.
결론적으로 이 프레임에서는 권은희 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진술만으로 절대 유죄 판결문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정황 증거를 인용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판결은 시작부터 '무죄'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경찰 증인들 '김용판 공범들'인데…검찰은 재판부가 이같은 '다수결 무죄 판결'을 내놓도록 원인을 제공했다.
검찰이 국정원 댓글사건과 경찰의 축소·은폐혐의 수사를 시작할 때 '원칙적 잣대'를 동원해 이 사건의 도화선이 됐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 씨와 김용판 전 청장과 공범관계인 경찰들을 기소했다면 이런 프레임이 쉽게 작동하기 어려웠다.
검찰은 서울경찰청 분석관 10명의 증인에 대해 피의자로 소환조사한 뒤 공범으로 규정하고 '피의자신문조서'까지 작성했지만 이들을 입건하지 않았다.
수사팀에서 김 전 청장뿐만 아니라 공범인 경찰들도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수뇌부는 그렇게 되면 "기관간 사건파장이 너무 커진다"며 반대했고, 결국 김용판 전 청장만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경찰이나 국정원은 계급에 따라 상명하복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조직 특성을 감안해 수사 경찰이나 국정원 직원들은 '명령에 따라 복종했다'는 논리를 내세워 그들을 기소하지 않은 것이 뼈아픈 실책이 됐다"고 말했다.
기소를 했다면 경찰 증인들은 법적으로 명백히 김 전 청장과 공범자가 되기 때문에 '다수결 무죄 판결'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