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이 당국 간 직접 대화의 시대로 진입했다."
대만 주요 언론은 11일 양안 첫 장관급 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한마디로 이렇게 압축해 표현했다.
'신(新) 이정표', '신기원' '중대 돌파구' 등의 표현을 써 가며 이번 회담이 양안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부각시켰다.
이번 회담은 양안 정부기구 간 제도적 대화 채널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평가받고 있다.
중국으로선 '하나의 중국' 원칙을 대외에 과시하는 기회로, 대만은 양안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물밑 타진하는 계기로 이번 회담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민간대화 개시 21년 만에 새 돌파구 = 중국과 대만은 21년 전인 1993년 4월 27일 싱가포르에서 민간 기구인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처음 회담을 개최하면서 '군사대치 시대'를 '담판의 시대'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이들 기구를 통한 그간 9차례의 양안 회담은 논의 대상이 경제협력과 민간교류 부문에 국한됐다.
이번 장관급 회담은 대화의 범위를 정치 분야로까지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했다는 점에서 1993년 회담을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 만남이 '빈손'으로 끝나더라도 앞으로 2차, 3차 회담을 통해 경제협력 단계에 머물렀던 양안 교류를 자연스럽게 정치 대화 단계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대만연구소 저우즈화이(周志懷) 소장은 "양안 대화는 앞으로 속도를 낼 것"이라면서 "양안 협상에서 권위와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 중국문화대학교 사회과학원 사오쭝하이(邵宗海) 원장도 "당국 간 대화 채널이 구축되면서 해협회, 해기회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면서 "양안 관계 발전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 "당국 간 회담, 첫 단추 상징성" =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의제에 관한 성과물을 내는 데는 한계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양안은 장관급 회담에 앞서 양안 대표기구 성격의 사무소 상호 설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지역 경제공동체 공동 참여, 양안 정부기구 간 상시 대화채널 구축, 언론 매체 상호 상주 허용 등의 의제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상시 대화채널 구축에만 잠정적인 합의를 이끌어 냈을 뿐 나머지 안건에 대해선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간다는 정도로 결론을 냈다.
이는 당초 이번 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당국 간 직접대화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연합보 등 대만 언론은 분석했다.
◇ 中 '정부 대 정부' 모양새엔 민감 반응 = 대만과 중국 정부가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차이가 감지된다.
중국 정부는 대만 측 대표인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왕위치(王郁琦) 주임위원(장관)에게 공식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고 경제일보 등 대만 언론이 전했다.
중국으로서는 정부 대 정부 대화로 이번 회담이 비치는 것이 마뜩지가 않다는 방증이다.
중국 측은 이번 회담에서 대만 대표단에 3가지 '레드라인'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화민국(대만의 공식 국호)을 언급하지 않고 정치 이슈를 토론하지 말 것,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거론하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 민간분야 이미 '차이완 시대' = 양안은 민감한 정치 이슈를 제외하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밀월기에 접어들었다.
과거 미사일을 서로 겨누며 군사적 긴장관계를 연출했던 양안이 이런 현상 변화를 보이는 데는 2008년 친중국 성향인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의 취임이 계기가 됐다.
마 총통은 취임 이후 전면적인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신(通信) 교류의 '대삼통'(大三通) 시대를 열었다.
2010년에는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 양안 경제교류 시대를 가속화했다. 대만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중국에 의존한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대만인 기업가만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중국과 대만을 아우르는 공동시장 개념의 '차이완'(Chiwan) 시대가 이미 성큼 눈앞에 와 있는 셈이다.
민간 교류 부문에서도 지난해 한 해 동안 285만 명의 중국인이 대만을 다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