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이 브라질행 티켓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교실에 앉아 시험 문제지를 받았다. 그동안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시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몰랐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문제를 출제한 선생님은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남겨 커트라인을 통과하기를 바랐다. 학생은 고민했다. 시험 준비가 부족했다는 핑계를 대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한 가지, 기본 실력만 갖고 문제를 풀기로 했다.
그동안 학생은 시험을 보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 8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회를 얻었다. 기본 실력 그리고 반드시 시험을 통과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더해져 기대 이상의 성적표가 돌아왔다. 답안지를 받아본 선생님은 흡족했다.
학생은 박주영, 선생님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대표팀 승선 테스트에서 '인생 골'을 넣은 박주영. 브라질행 티켓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기까지 단 45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박주영은 6일 새벽(한국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원정 평가전에서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동안 유럽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가 없어 대표팀의 호출을 받지 못했던 박주영. 기회를 기다렸다는듯이 놀라운 기량을 뽐냈다.
전반 18분, 손흥민이 왼쪽 측면에서 공을 띄워 문전으로 보냈다. 공은 쇄도하는 박주영의 앞에 정확히 떨어졌다. 박주영은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골문 구석을 찔렀다.
13개월 만에 대표팀으로 돌아와 846일 만에 A매치 골을 터뜨렸다. 특유의 기도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박주영의 활약은 놀라웠다. '클래스'의 차이를 입증했다. 비록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전반 7분 날카로운 연결 패스로 이청용에게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줬다. 활발한 로테이션과 2선 침투를 추구하는 홍명보호의 공격 전술을 100% 수행해냈다.
박주영은 후반 시작과 함께 김신욱으로 교체됐다. 전반 45분 만에 홍명보 감독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후반 들어 전반만큼 세밀한 공격을 펼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박주영의 골을 어시스트한 손흥민의 발에서 추가골이 나왔다.
후반 10분, 김신욱이 중원에서 헤딩 경합으로 공을 따냈고 구자철이 문전 왼쪽으로 파고드는 손흥민에게 기막힌 패스를 넣어줬다. 손흥민은 각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손흥민은 이날 1골, 1도움을 올리는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