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충신(忠臣)을 좋아할까, 양신(良臣)을 좋아할까.
역대 제왕들이 충신을 좋아했을지언정 양신을 중용한 예는 극히 드물다. '정관정요'를 비롯해 수많은 일화를 남긴 중국의 최고 황제, 당태종(이세민)조차도 양신을 죽이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총명하기로, 바르기로 이를 데 없는 위징이 사사건건 반대하자 한 번은 죽여버리겠다고 단단히 벼리었으나, 장손황후의 반대와 설득에 부딪쳐 포기한다.
직언 잘하기로 유명한 위징이 "자신은 양신이 될지언정 충신이 되지 않게 해달라"며 당태종을 설득한 골자는 이렇다.
"양신은 훌륭한 이름을 얻을 뿐 아니라 군주에게도 훌륭한 명성을 자손 대대로 전하며 천고에 이름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충신은 군주에게 미움을 사 죽임을 당할 수 있고 군주는 어리석은 악명만을 얻게 돼 나라가 망합니다. 오로지 헛된 이름(충신이라는 말)만 후세에 전해질 뿐입니다".
이런 고견을 들은 당태종은 기뻐하며 위징에게 비단 오백 필을 상으로 주었다. 당태종은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에게 패하고 돌아가면서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강력히 반대했을텐데"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도 한다.
'충신론'과 '양신론'을 현대 대통령제에서의 의미로 풀어본다면, 충신은 대통령을 위하지만 결국 대통령과 자신 모두를 망친다.
지금 필요한 건 대통령만을 위하는 충신이 아니라 자신과 대통령, 나라를 모두 살게 하는 양신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후세 역사가들은 위징을 양신의 표본으로 칭송한다. 그렇지만 '아니~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를 일삼는 위징 같은 신하를 밑에 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껄끄러운지, 지도자들은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위징도 훌륭하지만 당태종도 대단히 위대한 군주였다.
충신도, 양신도 만드는 건 군주다.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군 출신들과 법조인들은 양신에 가까운가, 충신에 가까운가. 사람의 성품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그들은 충신 쪽에 기울어져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법원 판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법조인들과 군 출신들은 지시를 잘 듣고, 명령에 잘 따르는 모범생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양신이 되고자 한다면 대통령의 부름을 거부했을 것이란 얘기다.
양신은 대통령의 지시와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부당하다면 거부하고 '아니~되옵니다'를 연발하며 사직서를 던질 곧은 성향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황찬현 감사원장, 최성준 방통위원장 내정자,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 (자료사진, 방송 캡처)
최근에 법원 고위직을 그만두고 정부 요직에 합류한 인사들을 보면 지금까지의 삶과 인품은 훌륭한 편이란 평가가 많다.
최성준 신임 방통위원장 내정자나 황찬현 감사원장,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은 모두 훌륭한 법관이자 인품도 괜찮다는 칭찬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그럴지라도 '그들이 양신이 될 사람들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말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검사 출신인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 황교안 법무장관 등이 '양신'에 가깝다고 옹호해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 변호사는 "그 분들이 간신은 아닐지라도 충신이나 양신으로의 분류 자체를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한 군 출신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는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홍렬 경호실장 등이 그들이다. 나름의 역할을 이행하고 있다곤 하나, 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다가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는 류의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독 군과 법조인 출신들을 요직에 기용한다는 평이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의 후임으로 최성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내정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여의도 정가의 일성은 "또 법조인이야"였다.
이어 나온 반응은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데, 판사가 방송과 통신 전문가야"라는 의아함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유감스럽게도, "토를 달지 않고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을 썼구만"이었다.
최성준 내정자를 잘 아는 현직 판사와 판사 출신 변호사 3~4명은 "아주 적임자를 골랐다"고 말했으나, 정작 여당 인사들은 뜨악하는 반응들이다.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 시절 '육법당'이 부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육사 출신과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법조인이 행정부에 많았던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군 출신과 판 검사 출신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사법 관련 부처의 한 현직 장관급 인사는 "청문회를 고려하다 보니 검증이 끝난 고위 법관을 쓴 것 같다"면서 "최성준 내정자는 대법관 후보에 두 번씩이나 올라 인사 검증을 이미 마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실 법원 내에서는 찬반 양론이 존재한다. 고위 판사들이 대법관과 헌법재판소로 가는 것은 별 문제가 없으나, 법관직을 버리고 행정부로 대거 이동한다면 사법권 독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비판론이다.
지난 2008년 김황식 전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감사원장으로 갈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기우일지라도 현직 판사들이 정치권과 고위 공직 자리를 기웃거리거나, (정권 입맛에 맞는) 위험한 재판을 할 수도 있다"며 "법원장급들이 행정부의 장관 자리에 가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며 그들을 기용하는 것 자체도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전문가라거나, 청렴하다거나, 바람직한 공직상이라는 청와대 판단과는 별개로 "판사로 시작했으면 판사로 공직을 마쳐야만 '양신'에 가깝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는 인사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