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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동안 언어폭력, 성추행에 시달렸다. 하룻밤만 자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하면서 매일 야간근무를 시켰다" 지난해 10월 여군 오 모 대위가 자신이 근무하던 전방부대 인근에서 이런 내용의 유서를 써놓고 자살했다. 자신의 직속상관인 노 모 소령의 지속적인 성 추행과 잠자리 요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고 정치권까지 나서 엄벌을 요구했던 이 사건은 솜방망이 1심 재판 결과로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군단 군사법원이 가해자인 노 소령에게 준엄하게 죄를 묻기는커녕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사실상 면죄부만 내준 꼴이 됐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재판에서 노 소령의 가혹행위와 욕설 및 성적 언행을 통한 모욕,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 추행 등이 모두 사실로 인정됐지만 그 정도가 약하고 전과가 없는 초범이라는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것이 육군의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남성 우위의 풍토와 상명하복의 지휘체계, 군의 폐쇄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만큼 군의 기강 확립을 위해 일반 사회보다 더 엄격한 단죄가 뒤따라야 했다. 그런데 이게 정상참작 사유라면 누가 믿겠는가? 더구나 노 소령은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반성의 빛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성 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던 국방부의 단호한 의지는 휴지조각이 됐고, 군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만 커지게 됐다.
더구나 재판과정에서 성 추행과 가혹행위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인 숨진 오 대위의 부대 출입기록을 군이 조작 은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그렇지 않아도 논란이 많았다. 누가 보더라도 봐주기로 보이는 이번 판결의 배경에 사건을 축소하고 지휘부의 책임을 면하려는 군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은 아닌 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군 검찰이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에 앞서 군 수뇌부와 사법기관은 대오각성하고, 이번 사건의 조사와 재판과정을 면밀히 재검토해 문제가 있다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증거 조작이나 은닉 여부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오 대위 사건은 이제 군 내부 성 범죄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군 당국의 분명한 의지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