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나 책 많잖아요. 음반도 많고..., 심심할 일이 없죠."
자원연 한만갑 박사
여자가 아닌 취미와 결혼한 과학자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근무하고 있다.
동료들 사이에서 만물박사로 통하는 한만갑 박사. 그는 검은색 안경테 너머로 마니아의 눈빛이 번뜩이는 괴짜 과학자다.
다재다능한 한 박사는 약 1년간 연구소 홍보팀 생활을 정리하고 본연의 임무인 연구생활로 돌아왔다.
그는 조만간 첨단소재관련 기술지도 기획과제를 맡게될 예정으로 현재 연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한 박사는 연구실에서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던 기자에게 직접 취미생활을 보여주겠다며 자신의 숙소로 안내했다.
연구원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작은 빌라에 도착한 순간, 보통 괴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이름난 ''오디오 광''
오디오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한만갑 박사
한 박사는 자신의 가장 큰 취미 중 하나로 음악을 꼽는다.
음악도 단순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최고의 음질을 만들어 내는 오디오 세트 구비에 많은 노력을 드리고 있다.
숙소의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얼핏 보기에도 수천만원대가 넘어 보이는 오디오 세트가 들어온다. 그 것도 한 세트가 아닌 두 세트. 여기저기 널려있는 장비를 합하면 한 세트는 더 나올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선재와 공구들이 방금 전까지도 시스템을 수리하고 있었음을 직감케 했다.
돈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비싼 돈 들여 꾸미는 오디오는 재미가 없다"며 "지난 30여 년간 한푼 두푼 알뜰하게 모아 마련한 장비들"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국내 유명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진정한 오디오 광으로 통한다.
특히 구입한 제품을 수많은 테스트와 업그레이드를 거쳐 훨씬 뛰어난 음질을 창출해 내는 것에 대해선 일부 전문가들이 자문을 얻고 있을 정도.
자원연 한만갑 박사-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급조된 오디오 세트
"약간의 돈을 들여 한 단계 향상된 음질을 확인할 때처럼 기쁠 때가 없다"며 "100만원짜리 장비에 약간의 부품만 업그레이드해 천만원짜리와 비슷한 음질이 나온다면 얼마나 이익인가"라는 말로 자신의 취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 박사가 테스트 겸 들려준 음악의 음질은 최고의 수준. 수천만원대의 시스템을 자랑하는 음악 감상실 음질과 비교해 하나 뒤떨어짐이 없다.
한 박사의 오디오는 대전의 숙소에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천안 본가에는 좀 더 확실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 시스템들도 한 박사가 직접 수리해 대전에 있는 것들 보다 한층 좋은 음질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음반량도 만만치 않다.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LP의 수는 손으로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한 박사는 "난 모든 돈의 단위가 1만 5천원이었다. 음반 한 장 가격으로 돈의 단위가 계산되는 것이다"며 "술 한잔 먹을 돈 있으면 음반 한 장을 더 사 모았다"고 말했다.
사진도 전문가 수준오디오를 지나 침실을 들어 가보니 꽤 오래된 듯한 카메라가 잔뜩 쌓여있다. 얼핏 봐도 대 여섯개쯤 되 보이는 바디와 10개 이상의 랜즈들. 그 중에는 반사망원경을 직접 개조해 만든 랜즈도 자리 잡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사진 장비들은 하나같이 전문가용으로 보였다.
한 박사는 "조카들에게 몇 개 선물한 후 지금 남은 카메라는 5대 정도다. 랜즈 중에는 현 시가 500만원에 육박하는 것도 있다."며 오랫동안 모아놓은 것들을 소개했다.디지털 카메라가 붐을 이루고 있는 시대지만 전문가의 손에는 아직까지 필름카메라가 매력적인 듯.
사진 역시 오디오와 같은 시기에 취미로 시작해 30년 정도의 경력이 붙었다. 그 사이 콘테스트에 여러 번 출품했을 법도 한데 아직 한번도 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다.
"바쁘기도 했고 대회 같은데는 흥미가 없어서..."라는 그의 말에서 진정한 취미의 자세가 묻어나온다.
한 박사는 "자원연은 연구 성격상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잘 어울린다"며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탐사하는 일이 많은 만큼 신선한 사진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해 일과 취미가 병행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무슨 취미든 전문가 수준
자원연 한만갑 박사
한 박사가 좋아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침실 한쪽 벽에 가득 꽂혀있는 서적들을 보니 모두 전문 서적들이다. 그 중 UFO나 초현실주의에 관한 책들도 다수가 보여 이 분야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보였다.
또한 한 박사는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한방에 관한 전문서적도 다수 독파했다. 이렇게 쌓인 한방 지식은 암 수술 후 급격히 몸이 나빠졌던 한 박사의 아버지 건강회복에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의사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길래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냐고 물을 정도 였다"고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집안에 젊은 여자가 없는 관계로 본가 살림을 혼자 도맡아 하는 한 박사는 요리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매주 한번씩 직접 시장을 본다는 한 박사는 시중에 나와 있는 단순한 요리책이 아닌 전문서적들을 탐독하며 요리를 배웠다.
"우리 요리는 어른들이 지켜나가야 한다. 전통 요리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의 잘 못이다"며 자신은 요리를 하더라도 좀 더 전문지식을 가지고 하려고 노력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렇듯 다방면에 재주를 가지고 있는 한 박사는 건축분야에도 많은 지식을 습득해 목조주택을 손수 지어보려는 꿈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경향 하우징페어같은 전문 전시회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으며 관련 서적도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중이다.
자원연 한만갑 박사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 자란 탓에 수많은 아르바이트로 집안을 꾸려나갔던 한 박사.그런 만큼 그의 취미도 같은 값이면 적은 돈으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손수 발품을 팔아 뛰어다니고 있다. 또 그러기에 자신이 마련한 장비들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한 박사는 내년 연구원 과제로 원료소재관련 대형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그는 "이 연구가 시작되면 음향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첨단 고순도 선재연구도 진행시켜 취미와 일이 결합되도록 하겠다"는 또 다른 꿈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