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월호 실종자 구조가 시급한 상황에서 첨단 장비를 보유한 민간 구난업체들과 직접 수의계약을 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에 내려와 "구조에 총력을 다하라"고 지시했지만, 정부는 관련 노하우가 있는 민간 업체와 전혀 계약을 하지 않은 채 일부 해군과 해경 인력만 동원했다.
또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 해운이 계약한 업체 '언딘'에만 구조작업을 의존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실종자 생명이 걸린 초반부터 적극적인 구조작업이 이뤄지지 못한 원인이 됐다.
◈ 조달청에 기름 제거종이만 요청, 구조 관련 계약 요청은 전무CBS가 조달청에 확인해본 결과 정부는 이번 진도 세월호 구조와 관련, 민간 업체들과 별도의 용역 계약을 단 한 건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달청에 따르면 정부가 요청한 것은 세월호에서 유출된 기름 방제작업에 쓴다며 유흡착종이를 요구한 것이 전부였다.
조달청 관계자는 "해경이 지난 22일 방제작업용 유흡착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다음날 긴급으로 업체와 계약을 해줬었다"며 "진도 세월호 구조 작업과 관련해서 별도의 요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법에 따르면 정부는 긴급한 상황에서는 민간 업체들과도 현장에서 바로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언딘 뿐 아니라 다이빙벨을 보유한 '알파잠수기술공사' 등 유수의 업체들과도 국가가 직접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26조에 따르면 '경쟁에 붙일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입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업체와 바로 수의계약할 수 있다.
여기서 '경쟁에 붙일 여유가 없는 경우'란 천재지변, 작전상의 병력이동, 긴급한 행사, 긴급 복구가 필요한 수해 등 비상재해 등을 포함한다.
300명 넘는 인명의 목숨이 달린 세월호 참사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예외 규정에 포함된다고, 조달청은 설명했다.
통상 국가기관이 민간 업체에 1억원 이상의 물품이나 용역을 계약하기 위해서는 조달청을 통해 공모 및 입찰 절차를 거치는데, 긴급 상황에서는 이를 건너뛰어도 되는 것이다.
◈ 국가가 민간 업체와 직접 계약하면 되는데, 오히려 돌려보내아주 긴급한 상황일 때에는 정부가 현장에서 민간 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 7조를 보면 "수요물자의 특성, 수요시기, 국내외 시장 여건 또는 국제적 관계들을 고려할때 수요기관이 직접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조달청을 거치지 않고 민간 업체와 바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조달청장에게 물품의 판명, 규격, 수량 등만 적어 보내면 된다. 아주 간단한 절차이다.
하지만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비롯해 해군과 해경 등 어느 곳에서도 민간 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민간 업체를 총 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오히려 자비를 들여가면서 첨단 장비를 싣고 왔던 업체를 되돌려보냈다.
또 사고 주체인 청해진 해운과 계약을 맺은 '언딘'측에만 의존해 실종자 가족의 반발을 사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조달청 관계자는 "현재는 상황이 시급하기 때문에 요청이 올 경우에 언제든지 빨리 물자나 용역을 조달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는 구조와 관련해 요청이 온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해군과 해경은 다른 업체가 가져온 장비를 철수시키고, 언딘 위주로 구조 활동을 실시한 것이 계약관계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청해진 해운이 언딘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 업체 위주로 구조작업을 실시했다는 것.
그런데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민간 업체들과 얼마든지 수의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구조에 총력을 다하지 않고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회 해양수산위 관계자는 "사고 발생 초반부터 왜 실력있는 민간 업체를 정부가 직접 안 부르냐고 말들이 많았다"며 "민간 업체는 해저 속에 건물을 짓는 등 난이도 있는 해저 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해군이나 해경보다 장비에서 더 전문화돼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