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침몰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만든 세월호 대참사. 하지만 사고 원인부터 부실 대응 배경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CBS노컷뉴스는 '잊는 순간이 바로 제2의 참사'란 판단하에 그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추적 검증한다. [편집자 주]
해양경찰이 올해초 세월호 출항을 통제했다가 별다른 이유없이 4시간만에 다시 허용한 것으로 드러나, 평소 청해진해운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될 전망이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 선원을 상대로 제기한 공소장 등에 따르면, 세월호는 지난 1월 20일 저녁 6시 30분 제주 연안부두에서 인천으로 출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대풍속 18~21m/s의 거센 바람 때문에 예인선을 사용해도 풍압을 견디지 못해 부두에서 이안조차 되지 않는 상태였다.
결국 출항통제권을 가진 제주 해양경찰서는 세월호 측에 운항통제를 통보했고, 이에 따라 승객 106명이 배에서 내려야 했다.
하지만 세월호는 불과 4시간 뒤인 밤 10시 30분쯤 해경으로부터 다시 출항허가를 받아냈다.
이에 따라 밤 11시쯤부터 30분간 예인선에 의해 가까스로 부두에 옮겨진 세월호는 밤 11시 30분쯤 화물을 싣고 인천으로 출항했다.
보통 세월호처럼 2000톤이 넘는 큰 선박은 출항이 통제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이를 다시 뒤집는 경우도 극히 드문 건 물론이다.
해경 관계자는 "관련 서류를 모두 압수당해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이런 일이 1년에도 몇 건 안 되기 때문에 담당자들이 다 기억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해경은 그러면서도 "당시 현장의 기상 상태가 나아져서 출항 허가를 내줬다"고 해명했다.
해경 관계자는 "세월호는 파고 5m, 풍속이 21m/s 이상일 때 출항이 제한된다"며 "아마 기준보다 폭넓게 적용해 운항을 통제했다가 기상조건이 좋아져서 배가 나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상청 기상정보를 기준으로 삼지만,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 날씨가 어떤지 확인해 판단한다"며 "경비정에 있는 풍량·풍속계를 이용하고, 파고 높이는 눈으로 파악하면 대충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기상청이 발표한 특보를 살펴보면 해경의 이런 해명과는 사뭇 다른 사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해경이 운항통제 결정을 내릴 무렵인 1월 20일 저녁 6시를 기해 서해 중부와 남부 먼바다엔 이미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다.
한 시간 뒤인 저녁 7시에는 남해 서부 먼바다와 제주도 앞바다, 제주도 남쪽 먼바다까지 풍랑주의보가 확대됐다.
각 풍랑주의보는 이틀 뒤인 22일 새벽 3시에야 모두 해제됐다. 세월호가 출항할 무렵 인천으로 가는 항로의 기상 여건이 나아지긴커녕 악화일로에 있던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당시 기상청이 내놓은 기상정보를 살펴봐도 세월호가 항해하는 동안 기상여건이 계속 나빠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인 21일 오후 4시까지 기상정보에는 "서해와 남해 서부, 제주도 전 해상에서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고 물결도 매우 높게 일고 있다"며 "항해하는 선박은 주의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제주도 앞바다에 있는 추자도 부이의 해상정보를 살펴봐도 20일 저녁 6시 최대 파고가 4.4m를 기록한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21일 저녁 7시쯤에야 3m대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청해진해운 제주지역본부가 작성한 '세월호 1월 20일 제주 지연출항 경위서'를 봐도 20일 당시 운항이 어려웠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경위서에는 "구조변경으로 인한 선박 무게중심 이동으로 화물의 양적하시 기울기로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며 "선박구조변경으로 인한 풍압면적 과다로 부두에서의 이안이 어려웠다"고 나와있다.
따라서 기상여건은 출항을 다시 허용한 이유가 될 수 없는 상황인 건데,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사실상 다른 배경을 지목했다. "당시 청해진해운이 화물차 기사들의 거센 항의로 해경과 협의한 끝에 출항 허가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해경 관계자 역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로서도 민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만약을 대비해 미리 운항을 통제하면 '기준상 운항할 수 있는데 왜 막냐'는 항의가 들어올 수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