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7) 할머니가 일본 정부가 군(軍)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 담화의 검증보고서를 발표한 데 대해 "자기 잘못을 광고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길 할머니는 23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열린 증언회에 참석하고 나서 "말 같지 않은 소리에는 남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길 할머니는 "말이 되는 말을 해야 남이 듣지. 상대편(일본 정부)의 말이 말 같지 않으면 아무도 상관을 하지 않는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작성 경위 검증을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의미를 훼손한 검증보고서를 발표했다.{RELNEWS:right}
고령의 길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날 소르본대에서 프랑스인 청중 앞에 섰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빼낼 돈 10원이 필요했던 길 할머니는 13세 때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사람을 따라 길을 나섰다가 위안부가 됐다.
할머니는 "죽음보다 못한 삶일 줄 누가 알았겠나. 너무 아팠다"라고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아픔을 떠올렸다.
이어 "열세 살 어린 나이로 너무 견디기 어려워 '엄마, 엄마'라고 소리쳤다"고 낮은 목소리로 증언했다.
할머니가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성범죄와 잔혹한 폭력에 시달렸던 아픈 기억을 꺼내자 청중 일부는 눈시울을 붉혔으며 긴 한 숨을 내쉬기도 했다.
할머니는 "해방 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싶었고 엄마 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내겐 아무 의미 없는 이름들이었다"며 평범한 삶을 빼앗긴 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제 여든일곱이 된 나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외친다"면서 "일본 정부는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의 피해자였던 할머니는 현재 세상에서 고통받는 자들과의 연대를 얘기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내 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합니다."
길 할머니는 강연 마지막에 "20년 동안 나 혼자 싸웠지만 (일본 정부는) 들은 척도 안 하니까 여러분이 좀 도와달라"고 지지를 요청했다.
두 시간 남짓 지속한 증언회에 참석한 50명가량의 교수와 학생, 파리 시민은 증언을 숨죽인 채 경청했다.
파리7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한 학생은 "위안부 할머니 얘기를 직접 들으니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용기를 내 증언을 해줬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25일 파리 에펠탑 부근에서 길 할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