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감정 상태가 직접 접촉 없이도 네트워크를 통해 '전염'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연구 논문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엉성하게 설계된 설문조사 등이 아니라 변인을 정량적으로 통제하고 페이스북 사용자 수십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상당히 높지만, 감정 관련 데이터를 다루는 데 따른 윤리적 문제를 우려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9일(현지시간) PNAS에 따르면 페이스북 코어 데이터 사이언스 팀의 애덤 크레이머,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제이미 길로리, 코넬대 커뮤니케이션학부와 정보과학부의 제프리 핸콕 등 3명이 '사회관계망을 통한 대규모 감정 전염의 실험적 증거'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네트워크를 통한 대규모의 '감정 전이'가 이뤄진다는 실험적 증거를 제시했으며, 특히 대규모의 통제된 실험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표본 수를 늘리고 통제된 실험을 실시하는 것은 과학적 타당성 검증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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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의 피험자 수는 자그마치 68만9천3명에 이르며, 실험은 2012년에 1주일간 실시됐다.
저자들은 페이스북 사용자의 뉴스피드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담은 포스트가 제거될 확률을 10%∼90%의 범위에서 달리했다.
다시 말해 뉴스피드에 뜨는 포스트의 노출 확률과 빈도를 조절함으로써 '정서적 자극'이라는 요소를 정량적인 변인으로 만들어 통제하고, 이것이 네트워크 차원의 감정 전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본 것이다.
그 결과 긍정적 포스트를 접하는 빈도가 감소한 사람들은 긍정적 포스트를 더 적게, 부정적 포스트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부정적 포스트를 접하는 빈도가 감소한 사람들은 긍정적 포스트를 더 많이, 부정적 포스트를 더 적게 생산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는 다른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표현한 감정들이 우리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통념과는 정반대로 사람들 사이의 직접 접촉이나 비언어적 신호(non-verbal cues)가 전혀 없이도 감정 전염이 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다만 이번 연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매우 높다.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이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 지적의 내용이다.
미국의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 영국 일간지 디 인디펜던트, 더 가디언 등 유력 매체들 상당수가 이를 지적하며 페이스북의 둔감한 태도를 비판했다.
또 인터넷 매체 슬레이트닷컴은 "설사 이 연구가 합법적인 것이라고 해도, PNAS에 논문을 내려는 과학자들이 지키도록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에는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속 기관의 윤리위원회를 통한 검토와 피험자들에 대한 통보 등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이번 연구를 페이스북이 허용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의 공보 담당 직원은 포브스에 "이 데이터는 특정 개인의 페이스북 계정과는 무관하며, 또 실험은 뉴스피드에 한정해 1주일간만 이뤄졌고, 친구들의 타임라인이나 직접 메시지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우리는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이 보는 내용이 가능한 한 유용하고 흥미롭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일고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이 논문은 PNAS에 온라인으로 실린 논문 2만2천203건 중 '온라인 영향력 집계' 1위로 올라섰다.
알트메트릭(www.altmetric.com)에 따르면 한국시간 30일 오전 8시 기준으로 이 논문에 관한 기사는 75개 매체의 92건에 이르렀고, 블로그에서는 21번, 트위터에서는 2천211번, 페이스북에서는 55번, 구글플러스에서는 35번, 레딧에서는 9번 거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