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본국으로 후송된 미국인 의사와 간호사가 시험단계 치료제 지맵(Zmapp)을 투여받고 호전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신부 미겔 파하레스 신부(76)도 지맵을 투여받는다는 소식이 10일(현지시간) 전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1일(현지시간) 의료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아직 안전성 검증을 받지 못한 시험 단계의 치료제를 사용하도록 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블룸버그통신, 뉴욕타임스, AP통신 등은 이같은 상황에서 지맵 등 시험단계 치료제를 본격적으로 공급하는 문제와 투여의 우선 순위 등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지맵은 생산량도 극히 제한적이고 개발사인 미국의 맵바이오는 전면 생산에 착수한다고 해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지역에 공급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물량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도 당면 과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외국인들만 지맵의 혜택을 받을 뿐, 정작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서아프리카 의료진들은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한다며 인종차별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WHO, 뒤늦게 교통정리 나서
11일 소집되는 WHO 윤리위원회는 부작용 등이 알려지지 않은 등 안전성이 아직 확보되지 않은 시험단계의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만일 사용하게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과 조건으로 이 시험용 치료제를 투여하도록 할지를 검토한다.
또 아직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시험 단계의 치료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공급량이 제한된 이 치료제를 어떤 기준에 따라 분배할지에 대한 기준도 협의한다.
WHO는 일부 구호기관들로부터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공세적인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WHO가 지난 8일 국제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한 지 8개월만에 이뤄진 것이다.
라이베리이아 파견된 유럽연합(EU) 집행위 인도지원부의 보건 전문가 쾬 헨케르츠는 불룸버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WHO는 기술적 조언 이상의 것을 행할 큰 책무가 있다"고 꼬집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영향권에 근 700명의 인력을 두고 있는 의료 단체 '국경없는 의사들'은 지난 몇주동안 대규모의 의학·역학·공중보건적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누차 경고해왔다면서 WHO의 늑장 대응을 비난했다.
WHO윤리위원회 소집에 대해 미국 뉴욕주립대(NYU) 랭건 의학센터의 아서 캐플런 의료윤리부장은 "비상시에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놓고 아주 뒤늦기는 했지만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최초의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캐플런 부장은 시험 단계의 치료제를 사용토록 허용한다면 어떤 여건에서 이를 사용토록 할지가 차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례로 이 치료제의 효과와 부작용 가능성 등을 잘 알고 동의하는 사람에게만 투여할지, 서아프리카 기니의 극빈층 주민에게 이를 설명하고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현지 정부당국이 이를 허락할지 등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캐플런 부장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WHO는 치료제의 사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권고만 할 수 있을 뿐, 제약사들에게 치료에 관련해 부담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약사는 치료제의 냉장보관과 수송, 적절한 취급, 환자 사망에 따른 책임 전가, 문맹자와 빈민에 임상실험 단계의 의약품을 실험했다는 비난 등을 우려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물량 확보가 과제…치료 우선 순위 논란
나이지리아와 라이베리아 정부당국자들은 미국인 의사와 간호사가 지맵을 투여받고 상태가 호전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치료제 공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FDA측으로부터 소량만이 가능한 상태라는 답변을 얻었을 뿐이다. AP통신에 따르면 FDA대변인은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공급 요청과 관련해 "사실상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