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밀어붙인 고정금리대출 확대 정책이 서민들의 이자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탁상공론 식의 정책만 붙들고 현실적인 정책 변화를 꾀하지 않는 금융당국의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4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연 2.5%→2.25%)로 대출금리가 평균 0.25%포인트 하락할 경우 약 9천억원의 가계대출 이자 경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3월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 478조5천억원 중 변동금리대출분 355조5천억원(74.3%)의 대출이자가 9천억원 가까이 줄어들면, 대출자 779만6천여명이 1인당 연간 11만4천원의 이자 경감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나머지 25.7%에 해당하는 123조원에 달하는 고정금리대출을 받은 고객들이다.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하락한다고 하면 이들이 받지 못하는 이자 혜택은 무려 3천억원에 달한다.
사실 2011년 상반기까지 전체 가계대출에서 고정금리대출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고정금리대출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전체 가계대출의 5% 수준인 은행들의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2016년 30%까지 늘리는 내용의 `6.29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2011년 6월 금융당국이 내놓으면서부터다.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은행들이 신상품을 내놓고 고객들에게 고정금리대출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면서 고정금리대출의 비중은 가파르게 올라갔다.
2010년 말 전체 가계대출의 5.1%였던 고정금리대출의 비중은 2011년 9.3%, 2012년 19.8%, 지난해 21.3%로 오르더니 올해 6월 말에는 25.7%까지 높아졌다.
문제는 고정금리대출의 확대 추세와 동시에 시중금리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점이다.
2010년 연 5%였던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11년 4.92%, 2012년 4.63%, 지난해 3.86%로 떨어지더니 올해 들어서는 6월 말 기준 3.58%까지 주저앉았다.
금융당국의 말을 믿고 고정금리대출을 받은 고객이라면 최근 3년 동안 1.34%포인트에 달하는 대출금리 하락 혜택을 놓친 셈이다. 2억원 대출을 받은 고객이라면 대출이자가 1%포인트 차이만 나더라도 한해 200만원의 이자를 더 내야 한다.
대출금리의 하락세로 신규 가계대출 중 고정금리대출의 비중은 올해 1월 14.5%까지 떨어졌지만, 금융당국은 고정금리대출의 비중을 2017년 40%까지 늘리겠다는 더 적극적인 가계부채 구조개선안을 2월에 내놓았다.
이에 은행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고정금리대출 특판 상품 등을 내놓으며 판촉에 나선 결과, 신규 고객 중 고정금리대출의 비중은 지난 6월 42.3%까지 다시 올라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 은행 창구에는 고정금리대출을 변동금리대출로 바꿀 수 있느냐는 고객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높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금융 소비자와 금융권의 현실에 맞는 유연한 정책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시중금리가 떨어지면 고정금리대출자의 상대적인 피해가 커지지만, 반대로 시중금리가 급격히 올라가면 싼 금리에 고정금리대출을 내놓은 은행들의 건전성 악화도 우려된다"며 "고정금리대출 비중이 가계대출의 건전성을 나타낸다고 보기도 힘든 만큼 시장 자율에 맡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