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서 ‘유가족의 뜻에 따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재협상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황진환 기자)
세월호특별법 정국이 시계제로 상태로 빠져들었다.
당사자인 세월호 유가족들이 재협상안을 부결시키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임시지도부는 패닉상태라고 할 만큼 앞길이 막막한 상태를 맞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정국의 돌파구를 모색하던 여권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1차협상은 새정치연합 내 강경파 의원들이 협상안을 뒤집으면서 합의가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재협상 내용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유가족들이 반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새정치연합은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지도부의 협상안 추인을 보류했다.
박영선 원내대표를 비롯한 야당 원내지도부는 1차협상에서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이번에는 당내외 관계자들을 상대로 폭넓은 의견수렴절차까지 거쳤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 "박영선 대표 억울한 부분 있을 것"원내대표실 관계자는 21일 "대표는 진정성을 갖고 협상을 진행했는데 당에서 안 믿어줘서 진정성과 다르게 얘기되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고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영선 대표는 20일 광화문에서 장기 단식중인 유민이 아빠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재협상안을 못마땅해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다시 협상에 나설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여당에서도 '재협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유가족들에게 재협상안 수용을 호소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재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설사 야당에서 입장을 바꿔 재협상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은다고 하더라도 현 지도부가 협상에 나서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이미 2차례나 합의사항을 번복한 마당에 다시 협상을 진행하더라도 결과는 뻔할 것이란 여당의 불신에다 당내에서 누구도 지도부에 협상결과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패닉상태에 빠진 야당 지도부는 일단 당내외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며 숨을 고르고 있지만 실타래처럼 엉킨 상황을 풀어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유가족들의 요구를 100%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를 이룬 상황에서 어느 누가 지도부를 맡더라도 구조적으로 뾰족한 대안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난국이다.
◈ 새정치연합이 추인해도 상황은 동일?새정치연합 핵심 당직자는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바라봤다.
이 당직자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에 유가족이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의원총회를 열어서 재협상안을 추인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유가족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반영한 협상안을 만들거나 협상이 파행인채로 방치하는 길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법체계의 근간까지 흔들면서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수는 없다고 마지노선을 긋고 있는 새누리당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2차례 협상과정에서 나름대로 양보를 했다.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5543'으로 유가족들에게 유리한 방향에서 매듭지었고 수사권논란은 특검추천위원회 여당추천몫 2인을 유가족과 야당이 동의하는 인물로 추천하기로 한 것이다.
박영선 원내대표 역시 이런 점이 이번 협상의 '상수'임을 유가족 대표들에게 분명히 주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가족 총회에서는 재협상의 전제조건이 된 이런 내용들이 힘없이 부정돼 버렸다.
세월호 사고의 본질은 정부 재난안전체제의 총체적 부실과 사고후 정부의 부실대응이 불러온 참사라는 점에 정치권도 국민도 누구도 다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국민적 연민과 동정이 쏟아지고 있고 사회구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높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유가족들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수용 불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윤성호 기자)
◈ 상황 심각하지만 대안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적폐가 쌓여 있지만 이를 한꺼번에 다 도려내기는 어렵다. 생각처럼 쉽사리 일거에 모든 것을 처리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물론이거니와 지구촌에 모순과 갈등은 존재할 수가 없다.
어려워도 부족해도 못마땅해도 조금씩 양보하고 살아가는 것이 개혁의 과정이고 삶의 과정이며 이러다 보면 조금씩 더 나은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 현실인 까닭이다.
정치인은 현실에 발 딛고 가치를 배분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직업이다. 국민들의 유권자들의 요구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가 '유가족들이 원하는대로'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당내부에서 이에 반하는 목소리가 발붙일 공간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의원총회에서 강경성향 의원들의 주장이 난무할뿐 말 없는 다수 의원들은 침묵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만들어낸 협상안은 진실을 덮고 적당히 진상을 규명하자고 만든 법안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4달이 지나고 있고 사회 곳곳에는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사실에도 눈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