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연미복 정장에 빠른 손놀림, 재치있는 입담. 갑자기 비둘기가 나타나기도 하고 유리컵 안에 동전이 사라지는가 하면 사람 몸이 둘로 나뉘기도 합니다.
마술이라는 거, 눈속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변화 앞에 언제나 신기하기만 합니다. 예전엔 명절 때 특집 프로그램에서나 마술을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엔 마술 카페, 마술 극장 등이 생겨났고 가수 콘서트 못지 않게 마술쇼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죠.
마술의 대중화, 우리 마술이 이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정인선 한국마술협회장이 있습니다. 한의사 아버지와 교수였던 어머니의 반대를 무릎쓰고 마술을 시작한 지 30년, 그녀는 이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유명한 마술사입니다.
국내 여성 마술사 1호인 그녀는 마술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 12년 동안 끈질긴 노력 끝에 2003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사단법인 인증을 받아냈고, 젊은 마술사 양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마술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은선 씨의 마술인생을 10월 24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봤습니다.
◇ 마술의 구심점 위해 협회 세운 여성마술사 1호 [BestNocut_R]▶ ‘한국마술협회’ 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처음 만드신 거죠?
예, 제가 처음 사단법인을 설립했어요. 그게 대단한 일인지 실감이 오지는 않는데 다른 곳은 다 협회가 있는데 우리 마술만 협회가 없었어요. 마술을 하겠다는 젊은이들은 자꾸 나오는데 구심점이 없으니까 일단 협회를 만들고 보자 한 게 2003년 문광부에 인가를 받은 거예요. 제가 91년도부터 인가를 받으려고 뛰어다녔으니까 문광부에 반려 받은 서류만 해도 한 서랍이 넘어요. 결국은 2003년 5월 30일에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죠.
▶ 마술협회는 마술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재정이 어려우실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 협회는 정말 가난해요. 왜냐하면 사단법인을 처음 만들 때도, 협회를 만든다고 인감증명 달라, 뭐 달라 하는 것조차 다들 바쁘니까 힘들었어요. 그런데 돈을 내라고 하면 더 안 하겠죠. 그래서 거의 제가 다 하다시피해서 만들었고 또 사단법인을 내려면 사무실도 있어야 하는데 제가 갖고 있는 사무실을 협회에 기증했어요.
이렇듯 아직은 우리 협회가 가난하지만 내년이나 후년에는 부자가 될 거라고 확신하거든요. 어린 사람들, 중고등학생이나 초등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마술을 해요. 부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 지난 13일에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대륙별 국제 행사에서 국제마술사연맹 에릭 에스윈 회장님과 국내 유명 마술사 40여 분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치루셨다고요.
세계마술연맹 세계대회는 제가 20년 동안 세계마술사연맹을 드나들면서 참여했었어요. 보니까 3년에 한 번씩 대회가 열리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젊은이들은 자꾸 나오는데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기간이 너무 길어요. 그래서 제가 2000년도에 세계마술협회 회장단에게 제안을 했어요. 이러지 말고 대륙별 국제대회를 하자고요.
아시아도 하고 유럽도 하고 아프리카도 하고 각 대륙별로 하게 되면 1년에 한 번이든 2년에 한 번이든 어느 정도 추려서, 추려진 사람들을 내보내면 입상권에 드는 사람들로 압축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더니 2003년도에 회의에 붙여져서 2006년도에 결정이 났어요. 대륙별 세계마술대회(FISM)를 내년 8월에 한국에서 개최를 하게 되면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대륙별 세계대회는 세계최초거든요.
▶ 최현우, 박민수, 이은결씨 등 우리 젊은 마술사들이 기대가 많겠어요.
이은결 마술사는 지금 군대에 가 있어요. 박민수 마술사도 그렇고 이 사람들이 지금 한창 테크닉을 개발하고 연구하고 연습해야 하는데 이 귀한 시간에 본인이 원해서 가겠어요.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참 속상해요. 내년에 국제대회가 열리는데 시기를 늦춰준다든지 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 딴따라로 집에서 쫓겨난 마술사랑 외길 30년▶ 어떻게 해서 마술에 빠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마술을 한 연수를 줄여요.(웃음) 10년 됐을 때는 11년 됐다고 늘렸는데 지금은 30년쯤 되니까 20년 됐다고 줄이고 싶은 거예요. 마술을 한 지 거의 30년이 됐어요. 그러니까 30년 전에 마술을 한 거죠. 제가 어렸을 때 투명인간이라는 만화책이 있었어요. 붕대를 감으면 보이고 풀면 안 보이고 이게 마술이잖아요. 그게 너무 신기해서 만화책 다음 편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만화책방 앞에서 쪼그리고 있다가 보고 집에 가곤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여고를 가게 되었는데 국어 선생님이 굉장히 멋있는 분이었어요. 그 선생님이 저한테 심부름을 많이 시키셨어요.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심부름 시키면 좋잖아요. 그런데 나 말고도 다른 아이들한테도 심부름을 시키는 거예요. 그때 나를 좋아하시는구나, 예뻐하시는구나 생각했는데 다른 아이들한테도 시키시니까 도대체 무슨 마음이야?
그래서 독심술 책을 갖다 놓고 읽었어요.(웃음) 독심술 책을 읽다 보니까 독심술을 알면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한다, 그러면 최면술로 최면을 걸어버리는 거죠. 단계가 그렇게 됐어요. 그러다가 TV를 봤는데 사람을 잠재워서 허공에 붕 띄우는 거예요. 옳다, 저거다, 그래서 마술의 늪에 풍덩 빠져서 평생을 걸어오게 된 거죠.
▶ 아버지는 한의사, 어머니는 교수님이셨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굉장하셨겠어요.
굉장히 반대하셨어요. 소위 딴따라라는 거죠. 제가 고향이 충청도 청주에요. 양반고을에서 한의사와 선생님을 하면 양반 중에 양반이거든요. 그런 쪽에서 보면 딴따라라는 말이 나오죠. 우리 부모님이 일정 위치에 있으시니까, 그리고 밤에 뛰어다니고 계집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얼굴에 분칠이나 하고 다닌다고요. 살짝 립스틱만 발라도 분칠이라고 혼났어요.
▶ 그때가 언제였나요?
제가 정말 마술에 빠져서 돌아다닌 건 대학 들어가서였고 그 이전부터 엄마가 쓰시는 화장품을 친구랑 몰래 발랐는데 2시간 정도 지나니까 알레르기 때문에 얼굴이 2배로 커지더라고요. 친구하고 둘이서 방에서 화장을 열심히 하고 밖에 나갔는데 삐에로 하얀 분장 있잖아요. 그랬는데 얼굴이 2배로 커져서 또 혼났죠.(웃음)
▶ 초창기 때 하셨던 마술은 어떤 것들이었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술사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마술이 있어요. 저도 그 룰을 벗어나지 않고 그 식으로 했는데 카드나 동전을 가지고 하게 돼요. 카드는 촤르르륵 펼쳤다가 다시 접는 거고, 동전은 손에서 없어지기도 하고 귀에서 다시 잡아내기도 하는 거예요.
▶ 마술에서 밤무대라는 건 많은 사람들한테 마술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경제가 많이 가라앉아서 밤무대가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 저보고 옛날에 비즈니스 하던 곳에서 밤무대에서 하라고 연락이 와요. 그때 당시만 해도 제가 집이 없었어요. 집에서 쫓겨나서 친구 집에서 얹혀살았는데 친구 애인이 집에 오고 싶어도 저 때문에 못 오고 그렇게 오갈 데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연습실은 더더구나 있을 수가 없죠.
그런데 하루에 7,8군데 라이브를 뛰는데 돈을 받고 하는 거니까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살아있는 연습을 했어요.오후에 4시 반, 5시에 화장을 시작해서 첫 무대가 8시 20분 정도였어요. 그러면 그거 뛰고 8시 50분에 바로 옆에 가서 뛰고 9시 반부터 10시 반이 로열 타임인데 또 뛰고, 그러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새벽 5시쯤이에요. 그러면 운전도 직접 하니까 굉장히 졸리고 피곤해요.
◇ 오케이, 땡큐밖에 모르고 찾아간 독일 스승, 설움도 많이 받아
ㅍ
▶ 마술을 해보라고 하신 스승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마술을 저보고 해 보라고 한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여고시절이나 대학 다닐 때 신문에 광고가 많이 났었어요. 무랑루즈, 초원의 집, 쉐라톤워커힐 호텔 등에서 하는 쇼를 보면 마술쇼가 나오잖아요. 요즘은 매직 콘서트지만 당시에는 마술쇼였거든요. 마술이라고 붙어있으면 제가 쫓아간 거예요.
제가 본격적으로 마술을 하게 된 것은 독일에 갔을 때 ‘알프레드 켈라호프’라는 마술사가 있었어요. 지금은 이분이 거의 돌아가실 때가 됐고 이분 아들이 마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분을 찾아가서 마술을 배우는데 사실은 제가 영어를 못 하거든요. ‘오케이’ ‘땡큐’ 밖에 모르는데 가서 마술을 배우니까 정말 설움이 많았어요.
의사소통이 되던 안 되던 상황은 똑같았을 텐데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마술을 가르쳐주기 싫어해요. 돈 줘도 싫어해요. 저도 옛날에는 싫었거든요.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좋은 물건을 보잖아요. 살 수 없으면 한 번밖에 안 가요. 살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생기면 가는 거죠. 저는 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보기만 해서는 우리 마술계가 발전할 수 없다. 자기가 할 수 있게 해 주자고 해서 1988년도에 ‘생활마술’이라고 해서 중앙일보사의 중앙문화센터의 마술강좌를 시작했어요.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또 만화로 그려서 설명해 주고 제가 만화를 좋아했으니까요.
▶ 처음 배우실 때 한 달에 30통씩 외국마술사들에게 편지도 쓰셨어요.
그렇게 보내면 주소지 변경 등으로 인해서 반송되는 것이 3분의 1, 그냥 꿀꺽 하는 게 3분의 1이 넘었고 답장 오는 건 2,3통이었어요. 답장을 받으면 일단 그 나라에 그 사람을 찾으러 가요. 일단 편지를 주고받았으니까 알잖아요. 편지로 면을 트는 거죠.
▶ 그러면 그분한테 전수를 받게 되는 건가요?
예, 한국에서 밤무대를 뛰어서 두 달 석 달 돈을 벌어서 편지에 답장 온 사람을 딱 찍어서 가는 거예요. 다행스럽게 독일에서 오고 이태리에서 오면 같은 유럽이니까 한 번에 가면 되는데 하나는 아시아에서 오고 하나는 미국에서 오면 곤란하잖아요. 이러면 스케줄을 다시 맞춰야죠.(웃음) 2,3달 밤무대에서 벌면 한 달 가서 다 쓰고 다시 와서 벌고 그랬어요.
그때 그냥 좋아서 했어요. 밤무대를 오후 5시에 나가서 다음 날 5시에 들어오면 정말 피곤하거든요. 그런데 고단하다, 힘들다는 걸 몰랐어요. 사람들이 저보고 한국 마술계의 최고의 권위자다, 대모라고 하는데 저는 그 얘기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려요. 다만 우리 어린 새싹들, 마술계의 꿈나무들을 위해서 길을 닦고 있다는 생각뿐이에요.
87년도부터 95년도까지 야간업소 출연하는 게 가장 황금기였어요. 하루 저녁에 마술 팀으로서 7,8군데를 뛰는 건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여자 듀엣이 전 세계 최초로 저밖에 없어서 인기가 하늘을 찔렀죠. 아라비아 숫자 올라가는 재미로, 어쨌든 돈 쓸데가 없었어요. 밤에는 야간무대 뛰고 낮에는 인터뷰하고 이벤트 뛰고 하니까요.
▶ 그러면 연구 개발은 언제 하셨어요?
그때는 개발하지 않고 외국에서 직수입을 해 버렸어요. 외국 친구들이 마술 도구를 직접 들고 왔어요.
▶ 앞으로도 전성기가 계속 이어질 것 같은데요.
실제 퍼포먼스 전성기는 그때였고 지금은 또 다른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도 무대나 매치 테크닉이나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떨어지지 않고는 있는데 그래도 돈 줄 사람들은 나이 먹은 사람 쓰는 거 싫어하잖아요.
그러니까 무대에서의 전성기는 어느 정도 접었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도 큰 쇼는 해요. 이제는 세계무대의 정상에 태극기를 꼽는 일, 그게 제2의 전성기에 제가 할 일이에요.
▶ 우리나라 마술 1세대는 예전에 봤던 곡마단에서 연기하셨던 분들이신가요?
그렇죠. 이흥선 선생님과 윤광식 선생님 두 분이 계시는데 이흥선 선생님은 연세가 너무 높으셔서 마술협회 명예회장이시고 윤광식 선생님은 저희 협회 이사세요.
▶ 1991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마술대회에서 입상을 하셨는데 참가자 150명 중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셨다고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대단한 기록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정말 슬픈 일이에요. 그 먼 땅에 가서 동양 사람이 나 혼자라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아세요. 그 날 비도 무지하게 왔어요. 호수에 빗방울이 주룩주룩 떨어지는데 호텔에서 내려다보고 울었다니까요. 그때 제가 처녀출전이었어요.
◇ 마술협회 설립위해 공들인 12년, 허가증 받고 흘린 눈물▶ 문화관광부로부터 사단법인 마술협회 설립허가증을 받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는데 어려운 과정이 많으셨나요?
물론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저는 설립 허가증에 금테로 봉황이라도 있을 줄 알았어요. A4용지에 빨간 도장 찍힌 게 끝이에요. 제가 이걸 받으려고 12년을 공을 들였어요. 그러니 금테라도 둘러야 되지 않겠어요. 달랑 한 장 받아들었는데 눈물이 나왔어요. 이거 빨간 도장 하나 받으려고 12년을 달려왔구나 하는 것 때문에요.
▶ 12년이나 걸린 이유는 뭔가요?
제일 처음에는 마술인이 없으니까 너희끼리 놀아, 그 다음에는 너희는 동호인 수준이니까 너희끼리 놀아, 그 다음에는 너희 돈도 없지? 또 그 다음에는 회원도 없지? 이런 식으로 계속 반려가 되었던 거예요. 그리고 이것도 어떻게 받았는가 하면 2000년도에는 세계마술협회에 대한민국을 회원국가로 등록을 했어요.
그리고 2003년에는 제가 세계마술대회의 심사위원이 되었어요. 세계대회의 심사위원을 받고 그 심사위원 위촉서를 번역본과 원본을 문광부에 내고 2003년에 받은 거예요.
▶ 외국에서 마술은 독특한 분야의 고급문화로 취급되고 있는데요.
일단 외국은 크게 2분류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순수하게 아트로서 영상이나 조명, 특수효과, 스테이지 등 모든 것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버라이어티하게 꾸미는 장르가 있고 또 하나는 누구나 즐길 수 있게 초등학생이나 4살짜리 생일축하 규모로 해서 10명, 20명 정도가 와서 할 수 있는 장르로 구분이 돼요. 지금 한국도 그런 추세로 가고 있어요.
▶ 그래서 마술특기 적성교육시간 같은 게 마련이 된 건가 봐요.
그렇죠. 지금 초,중,고등학교에서 주5일 교육이 실시되고 있잖아요. 맞벌이 부부가 많으니까 토요일에 아이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특기적성, 개발활동, 전일제 수업 이렇게 해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어린이들에게 배우게 하는 거죠.
아이들이 전자오락을 하면 오락은 재미있지만 나중에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죠.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고스톱이나 포커를 치면 재미는 있지만 돈도 나가도 속도 상하잖아요. 그런데 이 마술은 절대로 해로운 게 없어요. 꾀를 써야 하니까 머리가 발달해요. 그리고 마술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요. 내가 실수하면 이 사람이 웃죠. 창피하기는 하지만 이 사람과 친해졌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마술 몇 개 배워서 마술 강사입네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술강사는 어떻게 걸러져야 하나?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마술 잘 하면 얼마나 하겠어요? 이 아이들에게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해요. 네가 이걸 보여주면 이 사람이 기뻐한다. 잘 해도 못 해도 네가 열심히 해라, 이 정도면 되죠.
그리고 부모님들이 학교에서 마술 열심히 배웠다고 엄청나게 잘 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다 보여도 꾀쓰는 게 귀여운 거죠. 그러니까 마술 강사, 선생님 등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은 아이들에게 사람 사랑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하고 인성교육을 먼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걸러져야 하기 때문에 자격시험을 치르는 겁니다.
▶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인기를 끌면서 의사, 교수, 주부, 기업의 CEO까지 마술을 배우시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은 정치도 민선정치잖아요. 그래서 시장님이 시장을 돌면서 아줌마들과 친해지려고 하고 그럴 때 장미 만들어서 주고, 인성에 팍 남죠. 한 표 그냥 얻은 거예요.
▶ 아직 우리의 마술은 스케일이 작은 것 같아요.
만리장성을 통과하는 데이비드 커퍼필드는 자기가 사는 땅이 커요. 그러니까 큰 마술을 해도 괜찮은데 우리 한국은 땅 값이 비싸고 좁아서 큰 걸 하려면 큰 극장에 가야하고 대관료도 비싸요. 하지만 우리도 세계마술대회에 견우와 직녀를 준비하고 있어요. 하늘을 무대로 선녀가 나오고 나무꾼이 나오는데 큰 무대를 위해서 그렇게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스케일이 큰 것도 투자만 되면 돈만 있으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 새로운 마술을 끊임없이 개발해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고민이야 늘 하죠. 정은선 마술연구소 같은 경우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상금도 줘요.
▶ 무대에서 실패하신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여자 듀엣이잖아요. 저도 어리고 저와 같이 하는 마술사도 나이가 어린데 무대 위에서 일루전이라는 마술이 있었어요. 일루전은 사람을 다루는 마술이에요. 통 속에 사람을 넣고 찌르고 자르고 하는 거죠.밤무대 할 때인데 상자에 여자를 넣고 칼로 찌르고 있었어요. 상자에 바퀴가 길게 달려있는데 바퀴 4개 중에 1개가 뚝 부러졌어요. 속에 사람이 있는데 한쪽으로 찌그러져 버렸어요. 바퀴를 부러뜨린 실수를 한 거예요.(웃음)
그러니 밤무대에서 사람들 다 보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조명실에 대고 빨리 조명 끄라고 했는데 안 꺼요. 막을 내리라고 해도 안 내려요. 방법이 없어서 객석에 있는 손님 보고 소파를 올리라고 그랬어요. 그 손님이 말도 잘 들어서 올려줬어요. 그래서 바퀴 부러진 곳에 고이고 나서 무사히 다 마쳤죠.
또 한 가지 생각나는 건 단두대라고 있어요. 보이는 데서 목을 자르는 거라서 무릎 꿇고 목을 대면 작두칼로 자르는 거예요. 목을 세트에 잠가 놓고 보이는 곳에 하는 거죠. 그래서 했는데 칼이 내려갔어요. 그런데 안 빠져요.(웃음)우리 아가씨가 목을 내놓고 칼이 내려갔어요. 통과해서 내려갔으면 칼이 정상적으로 다시 나와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가씨는 죽은 게 아니고 우리는 쇼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 다 보는데 작두대를 춘향이처럼 쓰고서 걸어 나올 수도 없는 거죠. 그래서 웨이터들을 불러서 아가씨를 앉고서 대기실로 갔어요. 아가씨는 죽은 척하고 있고.다음 날 나이트클럽에 손님이 완전히 대박이 났어요. 그 아가씨 죽었나, 살았나 보려고요.(웃음) 그 아가씨는 아이 둘 낳고 지금도 잘 살고 있어요.
◇ ‘마술’ 너는 내 운명, 마술에 걸려 행복해▶ 마술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으세요?
호기심을 자극하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극복하고 승리해야 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저의 삶이거든요. 삶이라는 건 뭐가 좋다 나쁘다 말 할 수 없는 제 운명이에요. 마술의 늪에 빠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요. 저는 마술과 결혼했어요. 우리 제자들이 제가 결혼하는 걸 원치 않아요. 자기들이 배울 게 너무 많다나요.(웃음)
▶ 보람이 있다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지금 마술계에 누군가 이렇다 할 일을 해놓은 게 없기 때문에 제가 손을 대는 것은 한국 최초가 되고 하나의 획이 되고 있어요. 그것이 부담스럽고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 제자들이나 한국 마술의 꿈나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비료가 될 테니까요.제가 노력하는 걸 현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저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마술도구를 손에 들고 죽을 거예요. 그러고 나면 마술의 역사가 저를 말해주겠죠.
▶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죠?
사단법인 한국 마술협회에 사랑의 마술봉사단이 있어요. 여기에서 하는 일은 ‘마술로 어디에 봉사를 하러 가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내가 마술을 3가지를 할 줄 아는데 도와주세요.’ 하면 도와드릴 수 있고 또 ‘여기에는 이만큼 많은 어려운 분들이 있어서 마술로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하면 우리 매디션을 파견해 드릴 수 있어요.
때로는 무료지만 때로는 마술사가 한 번 공연을 나가면 공연료가 엄청 비싸거든요. 그런 것과는 별개로 실비로 해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1년에 분기별로 협회에서 지정해 놓은 곳을 가요. 혹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하고 같이 봉사를 갈 때도 있고요.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대륙별 국제마술연맹대회를 위해서 11월 2일부터 5일까지 홍콩에서 아시아 회의가 열려요. 그리고 세계협회장이 그곳에 와요. 저도 그곳에 가는데 세계협회장이 11월 1일에 오라고 해서 하루 앞당겨서 갑니다. 그 이후에 확정인증서를 가지고 올 거예요.
이게 제 마지막 미션인데 이번에 세계마술협회장이 들어왔을 때 매직 다이닝 파티라고 해서 우리 한국의 프로 매지션 40명을 모아놓고 VIP 초대해서 행사를 했어요. 돈이 많이 들었는데 우리를 위해서 한 게 아니고 세계마술협회 회장에게 보여주려고 한 거거든요. 노력을 많이 들였으니까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겠죠.
▶ 미래의 마술사를 꿈꾸는 사람들한테 한 말씀 해 주세요.
마술을 시작하거나 마술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 우리는 한 편이에요. 저도 마술의 길을 한평생 걸어온 사람이거든요. 반면 일반 관객들은 꼭 우리가 실수하기를 바라고 비밀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 캐내려고 그래요. 그리고 속임수장이라고 그러죠.
우리들 마술사들은 좀 더 정직해야 하고 좀 더 성실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서 마술을 보고 속임수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들, 인간관계를 통해서 마술은 정말 멋있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느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마술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