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박재홍의>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홍준표 경남지사 (자료사진)
홍준표 경남지사로부터 시작된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고 청와대는 일종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면서 무상급식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경남도에서는 18개 시군이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했지만 서울시에서는 보편적 복지기조를 유지하는 예산편성을 했다.
이에 맞서 교육단체와 시민단체들이 공동대응하기로 하면서 2011년 이후 4년여 만에 제2의 친환경무상급식 논란이 다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치사하게 왜 애들 먹는 문제를 볼모로 삼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권영철의 와이뉴스 전체듣기]▶ 무상급식을 문제 삼는 건 치사하다 이런 얘긴가?= 그렇다. '치사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쩨쩨하고 옹졸하다"고 풀이하고 있는 표준어이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연일 무상급식 때리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쩨쩨하고 옹졸한 일이다.
왜냐? 무상보육을 먼저할거냐? 무상급식을 우위에 둘 거냐? 이런 논쟁자체가 국민을 편 가르고 국가재정위기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과격하지만 치사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정부 여당은 솔직하게 증세가 필요하다고 하든지 아니면 예산편성을 제대로 해서 논란이 일지 않도록 하던지 해야 하는데 오히려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 이 문제가 왜 불거진 것이냐?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고 다양한 정치적 셈법이 있지만 사실은 단순한 문제다. 정부가 무상보육으로 불리는 누리예산 편성책임을 시도교육감에게 떠넘기면서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지난 9월 발표한 2015년 예산안에서 누리과정예산을 올해 3조 4,156억 원 보다 증가한 3조 9,284억 원으로 발표했다. 반면 내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39조 5,206억 원으로 올해보다 1조 3,475억 원이 줄었다. 누리과정 지원 대상자는 증가했지만 교부금은 줄이면서 혼란을 부추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0~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 완전책임'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실제 예산편성에서는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영유아보육법 제4조, 제34조에 보육의 책임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는 점과 무상보육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데 정부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3조 제1항을 근거로 시도교육청에 보육예산을 떠넘긴 것이다. 위법논란이 이는 대목이다. 시행령은 법에 위임된 사항을 규정해야지 법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 시도교육청이 별도의 조세수입이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까 정부 여당의 의도가 치사하는 것이다.
지방교육재정은 매우 열악하다. 각 시도교육청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조세 수입 감소로 내년 1조원 이상 감액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별도의 예산지원 없이 누리예산을 교육청으로 떠넘기면서 결과적으로 무상급식 예산을 무상보육예산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함 셈이 된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정부 여당이 사는 지역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하라고 지침을 내리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상급식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은 "무상보육은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고 무상급식은 공약이 아니"라고 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무상보육은 법에 지원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무상급식은 지자체의 재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가 무상급식 대신 무상보육을 선택하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무상복지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한 가정에서 학교 다니는 형의 밥그릇을 빼앗아서 유아원에 다니는 동생에게 주라고 하는 게 정상적인가? 아니면 형이나 동생 모두에게 골고루 밥을 먹여야 정상적인 것인가?
▶ 서울시에서는 무상급식, 무상보육예산 모두를 편성했는데?
(자료사진)
= 그렇다. 서울시는 내년 예산에 무상보육 1조 1,519억 원, 무상급식 1,466억 원, 기초연금 1조 2,545억 원을 정상 편성해서 보편적 복지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 중 서울시 부담액은 무상보육이 6,817억 원, 기초연금이 2,181억 원이다. 무상급식은 전액 시가 부담한다.
이렇게 되면서 서울 학생은 계속해서 무상급식을 하게 됐지만 경기도와 인천 경남, 대구 등 무상급식 지원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하는 그런 처지가 됐다. 사는 지역에 따라 학생들이 차별을 받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광역단체장이 어느당 소속이냐? 또 교육감이 이른바 진보교육감이냐 보수출신 교육감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무상급식 실천율이 가장 낮은 대구에서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누리예산을 전액 편성하기로 했다. 반면 경기와 전북, 강원지역 교육청은 내년예산에 누리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았다. 나머지 교육청은 3개월에서 7개월 정도의 누리예산을 편성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도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 경남지역 18개 시군에서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방침에 발맞춰서 무상급식 예산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심지어 경남지역에서 유일한 야당출신인 김해시장도 무상급식 예산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부산에서 유일하게 무소속인 기장군에서는 무상급식을 고등학교 전 학년까지로 확대했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교대를 나와 교사출신에 다시 한의사가 된 경험에서 어릴 적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는 점, 어릴 때 영양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이 들어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군수와 부군수의 업무추진비를 절반으로 줄이면서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했다.) 오 군수는 "교실에 책걸상과 칠판이 있는 것처럼 급식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 정부 여당이 왜 무상급식 논쟁을 촉발시킨 것이냐?= 한마디로 책임회피다.
무상급식을 할 것이냐? 아니면 무상보육을 할 것이냐? 선택을 강요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다.
무상보육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지금추세대로라면 2030년부터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해서 2100년이면 총인구가 지금의 절반이하로 줄어들고 노인 인구가 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데 무상보육은 기본이다. 또 무상급식은 이미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끝에 이제는 안착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정부가 갑자기 무상보육이냐 무상급식이냐를 선택하라고 하는 건 진영논리로 논란을 일으켜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무상보육은 보수진영의 공약이고 무상급식은 진보진영의 공약이라고 선을 긋는 것이 그 근거다.
정부 여당이 솔직하게 국가 재정이 어려우니 보편적 복지문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하거나 아니면 예산중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예산을 제대로 반영했어야 한다.
이럴 경우 문제는 정부의 무능을 시인하거나 재정파탄의 책임을 떠안아야한다는 것이다.
▶ 정부 여당이 이런 결정을 할 때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
새누리당 의원총회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그렇다. 정부 여당이 비빌 언덕이 없다면 이런 무모한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비빌 언덕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계속해서 높게 나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 치러진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승리했다는 점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계속 높게 나온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이런 결정을 하더라도 공고한 지지층이 계속해서 지지해 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매주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과 부정여론을 조사하고 있는데 아무리 낮아도 40%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40%대 중반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난 주(7일 발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긍정은 46% 부정은 42%였는데 이 중 60세 이상 노년층은 74%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확산되던 7~8월에도 노년층의 지지는 70%대를 오르내리면서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해보이지만 정부가 이런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이유는 진영논리로 편을 가르면 정책을 밀어붙이기가 쉬워진다는 점이다. 복지는 세계적인 추세이고 증세 없는 복지는 헛구호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국민들에게 솔직히 이해를 구하고 증세를 할 의지가 있느냐? 아닐 것이다.
무상복지 논쟁에 박근혜 대통령은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나서고 있고 이른바 보수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는 언론들이 무상복지 문제를 증폭시키면서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
▶ 이 문제를 풀 방법이 없는 거냐?= 답은 간단하다. 세금을 늘리거나 아니면 다른데 지출을 줄이거나 아니면 복지정책을 축소하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가장 핵심은 '증세 없이 복지가 가능하지 않다'는데 동의하는 것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이에 동의해야 한다.
한국일보가 최근 재정전문가 12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니 1명을 제외한 11명이 증세에 동의했다고 한다.{RELNEWS:right}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를 인하했는데 이것만 원상복구하면 5조에서 최대 7조원의 세금이 더 걷힌다고 한다. 그러면 무상급식, 무상보육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를 인하한건 이른바 트리클 다운 낙수효과를 기대한 것인데 그동안 대기업들은 돈을 쌓아만 뒀지 투자하지 않았다. 낙수효과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니 뭐니 편법을 동원할게 아니고 당당하게 증세에 나서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다수는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며, 복지를 위한 세금을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청와대나 정부 여당이 꼼수를 부릴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증세를 하고 불필요하거나 시급하지 않은 예산은 줄이고 필요한 예산을 배정한다면 이런 무상복지 논쟁은 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