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디플레이션 우려, 즉 'D의 공포'를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일반 가계 주체들은 "물가가 내려가면 좋은 것 아니냐"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와 가계의 인식 차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정부가 내미는 경고장에 숫자만 담겨있지 사람은 없는 게 아닐까. CBS노컷뉴스가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정부가 무섭다는 'D의 공포'…쓸 돈도 없는데 웬 물가걱정?
② 빚 위에 선 가계경제…"더 이상 줄일 데가 없다"
③ "정부 못 믿는다"…'각자도생' 나서는 사람들
(일러스트=이미지비트)
"물가가 내려가는 게 왜 문제예요?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상품 가격 같은 게 싸지면 서민들한테 좋은 거 아닌가요?" (30대 직장인)
"디플레이션 걱정이요? 어차피 지난 10년 동안 불황이라고 생각하고 허리띠 졸라매고 지내서 더 줄일 것도 없어요. 소비가 더 떨어질 게 있나?" (50대 주부)
정부와 언론은 이른바 'D의 공포'를 연일 강조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성장률이 3% 대 초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며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2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는 진단과 구조개혁 요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원과 주부 등 일반 가계경제 주체들은 디플레이션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실생활에서 디플레이션의 의미 그대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의 전조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일반 가계의 고정비라고 할 수 있는 식비 지출을 살피기 위해, 만원을 들고 서울 종로구의 한 마트를 찾아봤다. 부부가 쌀과 밑반찬을 준비했다는 가정 하에 한끼 식사가 가능한 품목을 살펴봤다. 일반 가정에서 가장 많이 먹는 육류인 삼겹살은 100g 당 2천3백원, 언감생심이었다.
'세일품목' 쪽으로 발길을 돌려 4천원에 고등어 한 마리를 샀다. 소량 포장된 파를 천원에, 작은 무를 천2백원에 구입하니 남은 돈은 3천8백원. 유통기간이 임박해 가격을 낮춘 포장두부 두모를 구입해 간신히 만원을 맞췄다. 마트에서 만난 40대 주부는 "세일하는 품목에 맞춰서 식단을 짠지 오래됐다. 그때 그때 먹고싶은 대로 장을 봤다가는 식비규모가 너무 커진다"고 말했다.
장바구니 물가를 포함해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올랐다. 전월세를 포함한 집세상승률은 더욱 가파르다. 지난달 전세는 지난해 같은달보다 3.0% 올랐고, 월세는 6.0%올랐다. 집값 인상폭 역시 올해들어 2.2~2.5% 인상률을 보이고 있다.
도시가스는 4.8%, 상수도료는 0.6%, 지역난방비는 0.1% 오르는 등 공공서비스 요금인상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하수도료(11.8%)와 시내버스요금(1.7%), 외래진료비(1.8%) 등 일반서비스 요금 인상도 가계의 부담이다. 정부의 저물가 경고에도 체감물가는 결코 낮지 않은 것이다.
(그래픽=임금진)
이처럼 '쓸 돈'의 규모는 올라간 상황에서 임금은 제자리이다보니 체감물가는 더 나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분기 3.4% 기록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6분기 연속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평균 실질임금 상승률은 0.08%에 그쳤다. 2011년 4분기(-2.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산출한 것으로 근로자의 실질적 구매력을 나타낸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떨어지면 가계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임시직은 명목임금 마저 1년전보다 1.5% 줄어 실질임금이 무려 2.8%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