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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벼랑 끝 99% 향한 거장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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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을 위한 시간' 벼랑 끝 99% 향한 거장의 위로

    [노컷 리뷰] 다르덴 형제 신작…"보너스 대신 날 택해 줘"

     

    2015년 새해 첫날 개봉한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수입 그린나래미디어㈜)은 전 지구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만국의 노동자에게 보내는 거장의 위로 담긴 덕담이다.

    메마른 시대를 살면서도 늘 따뜻한 시선으로 소외된 이들의 치열한 삶을 그려 온 형제 감독인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그들이 이번에는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탓에 벼랑 끝에 내몰린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복직을 앞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에게 어느 금요일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제보 덕에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되고, 일자리를 되찾고 싶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하기로 마음 먹는다.

    "보너스를 포기하고 나를 선택해 줘"라는 말을 하기 어려운 산드라와 각자 보너스를 필요로 하는 사정이 있는 동료들. 산드라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그녀를 지지하는 동료들이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반발도 거세진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을 결정할 기나긴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흐르고 있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카메라는 주인공 산드라가 전화를 받은 금요일부터 그녀의 복직을 결정할 재투표가 열리는 월요일까지 나흘간의 시간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90여 분으로 압축된 기록 안에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탓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의 동료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 시대 노동자들의 처지가 오롯이 녹아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금 시대를 사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대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태양열 전지를 만드는 업체에서 일하는 산드라와 16명의 동료, 그리고 그들의 가족,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 밑에서 지주보다 더욱 악랄하게 소작농들을 몰아붙이던 '마름'을 연상시키는) 중간 관리자인 반장, (의도치 않았더라도 산드라로 하여금 행복한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업체 사장 등이 그 면면이다.

    산드라가 일을 그만 두는 대가로 동료들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는 1인당 1000유로. 우리 돈으로 치면 133만 원 정도인데, 16명 동료의 보너스를 모두 합하면 2128만 원이다.

    "아시아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해서 위기"라고 말하는 사장의 입장에서 산드라의 몸값은 고작 이 정도로 매겨졌을 것이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한 장면.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산드라는 우울증 탓에 약을 먹고 있다. 복직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그녀와 남편은 대출을 받아 어렵게 이사 온 집을 떠나 다시 임대 아파트로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차도를 보이던 산드라의 우울증도 악화할 조짐을 보인다.

    산드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1000유로를 뺏고 싶진 않아.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계속 일할 수 있게 나한테 투표해 줬으면 해"라고 어렵게 말을 꺼낸다.

    이를 받아들이는 동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대학생 애한테만 매달 500유로를 써" "이혼하고 남차친구와 새출발을 해야 하거든" "와줘서 고마워. 보너스를 택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 "네가 해고되는 건 싫지만 큰 돈 놓치기도 싫어" "우리 16명이면 되는데 왜 널 복직시키겠어?" 등등.

    영화는 재투표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산드라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특별한 기교 없이도 관객들로 하여금 묘한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산드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관객 입장에서는 그녀의 복직을 바라는 마음이 큰 까닭이리라.

    그 연장선에서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나면서 겪는, 연속되는 희망과 좌절도 곧바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린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산드라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그들이 우리 옆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렌즈를 어느 한 지점에 고정해 뒀다가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을 따라가며 보여 주는 점도 관객이 밀접한 관찰자로서 사건을 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산드라와 남편이 동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타고 다니는 자동차 브랜드가 공교롭게도 '포드'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상품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던 분업 시스템인 벨트 컨베이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회사가 포드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래한 '포디즘'이라는 말은 자동차 핸들만 끼우는 노동자, 바퀴만 다는 노동자, 볼트만 조이는 노동자라는 식으로 분업을 극도로 세분화한 시스템을 일컫는다. 노동자들이 전문성을 잃고 단순 업무만 하도록 강제한 흐름의 중심에 포디즘이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정작 노동자는 자신의 계급을 규정짓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돼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산드라에게 2000만 원 조금 넘는 몸값이 매겨지고, 그녀의 동료들로 하여금 보너스냐, 사람이냐를 선택하도록 만든 비인간적인 처사도 결국 이러한 흐름 안에서 가능했던 셈이다.

    극 말미 산드라의 선택과 대사는 우리에게 자연스레 이 시대 노동자로서,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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