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김성완 (시사평론가)
◇ 박재홍> 김성완의 행간.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 나와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다룰 주제는요?
◆ 김성완>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벌어진 지 한달 만에 검찰이 조현아 전 부사장을 기소를 했는데요. 이제 언론에서 조 전 부사장의 이름은 점점 사라지게 되고 국민의 기억속에서도 조 전 부사장이 점점 잊혀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남긴 숙제는 무겁고도 큰데요. ‘땅콩회항’ 사건이 우리사회에 남긴 네 가지 숙제 그 행간을 좀 살펴볼까 합니다.
◇ 박재홍> 숙제가 네 가지가 되네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 김성완> 저는 이번 사건을 분노라는 단어로 좀 정리를 하고 싶은데요. 한 달 동안 국민이 뭐, 온 국민이 다 공분했던 사건이었으니까요.
◇ 박재홍> 그렇죠.
◆ 김성완>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재벌 3세가 구속되는 일까지 연결이 됐기도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남겨진 숙제도 분노라는 단어와 연결해서 한번 좀 정리를 해볼까 하는데요. 먼저 키워드만 간략히 소개를 해 드리면 첫째 분노대상선정의 기술, 둘째 분노억제기술, 셋째 분노표출기술, 넷째 분노보장기술. 이겁니다.
◇ 박재홍> 무슨 책의 목차 같은데. (웃음)
◆ 김성완> 너무 제가 딱딱하게 했나요?
◇ 박재홍> 4가지 키워드만 듣고는 사실 좀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는데 먼저 '분노 대상선정'의 기술, 무슨 의미인가요?
◆ 김성완>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면 ‘땅콩회항’ 사건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분노할 사건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뭐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의 대선개입 사건도 마찬가지였었죠. 국정원 간첩증거조작 사건도 굉장히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번에 가깝게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의혹 사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 박재홍> 그렇죠.
◆ 김성완> 그런데 우리는 국기문란 사건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고 또 반대로 오히려 개인적 일탈에 가까운 사건에는 지극히 분노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분노대상을 선정하는 우리의 기관이 뭔가 심각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분노해야 될 대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분노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보다는 좀 덜한 감정을 가져도 될 곳에는 지나치게 분노를 과잉표출하는 현상을 빚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죠.
◇ 박재홍> 그러니까 화를 정말 내야 될 때는 화를 못 냈고,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없는 대상에는 너무 과잉, 과잉해서 화를 내는 부분이 있었다.
◆ 김성완> 앞으로 그 화를, 그 분노를 ‘어느 곳에 또 무엇을 향해서 표출할 것인가’라고 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 박재홍> 그래서 두번째 키워드를 만드신 것 같네요.
◆ 김성완> 네, 바로 두번째 키워드는 '분노 조절기술'인데요.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났다, 그러면 그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는데 그러면 그 화를 풀 곳이 없잖아요. 오히려 어린 시절에 그렇게 되면 동네에 지나가다 깡통 보이면 깡통을 발로 차고 동네 개한테 엉뚱하게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있는데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웃음)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분노를 느끼면 분노하게 만든 사람에게 의사표현을 하는 게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나 우리 옆사람한테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유럽판 ‘카트’라고 해서 주목을 받았던 영화 있잖아요.
◇ 박재홍> ‘내일을 위한 시간.’
◆ 김성완> 네, 맞습니다. 혹시 보시지는 않았죠, 아직?
◇ 박재홍> 아직은 못 봤습니다.
◆ 김성완> 이 영화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를 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직원이 병가를 냈어요. 그런데 그 직원이 복귀할 때가 됐는데 나머지 근무 중인 직원들한테 작업반장이 물어봅니다. '그 직원이 복귀하면 한 사람은 그만둬야 한다 그걸 선택할래, 아니면 복귀 하지 않도록 투표를 해서 결정을 하면 그 대신에 1000유로의 보너스를 주겠다.' 그런데 직원들이 투표를 해서 어떻게 결정을 한 것 같으세요? 안 보셨으니까.
◇ 박재홍> 아마도 반대를 했으니까 영화가 나왔겠죠.
◆ 김성완> 맞습니다. 복직을 반대했습니다. 그 질문을 던진 당사자한테 우리가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한테 어떻게 이익이 되나, 그 방법에 대한 고민만 했다는 겁니다. 실제 우리 직장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죠. 아마 많은 분들이 경험을 하실 것 같은데요. 불이익을 눈 감고 넘어가는 경우, 부당노동행위를 눈 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내가 스스로 잘리지 않으려면 다른 직원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하는 굉장히 뭐랄까요.. 야박하거나 가혹한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땅콩회항’ 사건도 마찬가지인데요. 여 상무 같은 경우에는 구속이 됐지만 비행기를 몰았던 기장, 과연 책임을 전혀 안 물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기장이 만약에 "NO" 해 버렸으면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기장이, 명령을 내린 사람이 재벌 3세라고 하는 이유 때문에, 오너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말에 순종을 했던 거였거든요. 그 기장의 모습이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라고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 박재홍> 세번째 키워드는 '분노 표출기술'인데요. 이건 뭡니까?
◆ 김성완> 이건 여론 잡음제거의 기술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 박재홍> 잡음제거.
◆ 김성완> 네, 예를 들어서 제가 CBS 방송이 듣고 싶어요. 그래서 라디오를 탁 켰어요. 켰는데 잡음이 너무 심해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 박재홍> 돌립니다.
◆ 김성완> 다른 채널을 돌리거나 라디오를 끄죠.
◇ 박재홍> 그렇죠, 네.
◆ 김성완> 여론도 똑같습니다. 내가 뭔가 하고 싶은데 언론이나 이런 곳에서 막 이런저런 얘기가 막 중구난방으로 막 쏟아지면 그냥 그 사안에 대해서 눈과 귀를 닫아버립니다. 내가 그 잡음을 제거해서 다 걷어낸 다음에 그 내용의 본질은 무엇인가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고 그냥 관심을 꺼버린다는 겁니다. ‘땅콩회항’ 사건도 마찬가지인데요. 국민이 공분해서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 저는 굉장히 순진한 생각인 것 같고요. 이 사건을 다룬 언론 가운데 잡음을 넣는 언론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국민과 함께 공분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예전에 뭐 국정원 선거개입과 같은 문제, 정치개입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언론들의 논점이 크게 두 가지로 확 갈렸거든요. 그리고 난 다음에 계속 진보, 보수의 대결이니 뭐니뭐니 끊임없이 계속 논란들이 만들어졌거든요. 누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그런 논란이 만들어짐으로 인해서 결국 국민들이 거기에 짜증을 느끼고 관심을 꺼버리는 현상으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 박재홍> 네번째 기술을 빨리 말씀을 해 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 김성완> 마지막은 '분노보장'의 기술인데요. 이번 사건의 큰 변곡점이 있었는데 가장 큰 변곡점은 박창진 사무장이 "내가 입막음을 강요받았다 폭행을 당했다"고 하는 걸 고발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사람이 만약에 회사에 근무하지 못하고 그만둔다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겠죠.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 이 사람이 곧 나일 수 있다고 하는 것들을 보장하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