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데 대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양비론'을 들고 나왔다.
미국 정부가 그동안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과거사와 관련한 기조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이다.
셔먼 차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과거사 갈등과 관련해 예상 밖의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위안부 문제와 역사 교과서 내용, 해역의 이름 등을 놓고 한,중,일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이해는 하지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또 "과거 문제가 미래 협력을 제한하는 일이 불행하게도 아주 많다"고도 했다.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방문 당시 "위안부 문제는 끔찍한 인권 침해"라고 밝힌 것과는 상당한 온도 차이를 느끼게 하는 '양비론'이다.
셔먼 차관은 또 한국과 중국을 향해 "동북아 지역에서 민족 감정이 여전히 악용되고 있다"며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특히 '과거의 적'을 비난하는 것을 "도발"이라면서 "이는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일본에 대해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도발'이라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반해 셔먼 차관은 일본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물론 "스스로가 만든 역사의 덫에 갇히는 국가의 위험스러운 이야기를 멀리서 살펴볼 필요가 없다"면서 일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지만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이슬람국가(IS) 격퇴 등 일본의 국제 사회 지원과 노력을 상세하게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 정부의 이같은 기조 변화는 과거사로 인해 한,미,일 한보 협력이 약화되고 대중국 경제 구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을 앞두고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올해 한, 중, 일 3개국 정상들이 잇달아 미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과거사 갈등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기 위한 시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4월 말~5월 초 미국을 방문해 과거사에 대해 형식적 사과를 표명하면 이후 미국이 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셔먼 차관은 "미국과 일본, 중국, 한국이 지속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올바른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친다면 더욱 번영할 것"이라며 "이는 앞으로 몇달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강화할 메시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