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자료사진)
공직자가 직무와 관계없이 100만원만 받으면 3년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공직사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청탁을 근절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파장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3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논란이 거센 김영란법을 처리한다.
여야의 원내대표단과 정책위의장들이 2일 밤 모여 공직자와 부인의 금품수수에 한정한 김영란법을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국회 법사위원회가 만약 수정하더라도 정의화 국회의장으로 하여금 직권상정토록 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공직자와 공직자 부인이 직무 연관성과 무관하게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무조건 형사처벌한다.
음주와 골프 접대는 물론이고, 5만원 안팎(대통령령으로 정함)의 식사 제공, 명절 선물도 불법이 되는 등 접대 문화가 확 바뀔 것이다.
각종 청탁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게 된다.
주민들이 국회의원들과 아는 공직자들에게 아들을 취직시켜달라거나 뭘 알아봐 달라는 청탁을 할 수 없다.
김영란법은 공무원도 아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시켰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만도 300여만명이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들의 자녀와 형제들까지 적용대상으로 한 정무위 원안보다 적용 범위를 축소했으나 1년 6개월 뒤인 내년 9월부터 시행되면 공직사회에 찬바람이 불 것이다.
공직자들의 야간과 주말 활동이 크게 달라지고 심하게는 위축될 것이다.
김영란법이 여야 합의대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교육계, 언론계, 재계, 금융계를 비롯해 전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이 상당할 것이다.
술자리와 식사를 통해 소통을 하는 모습은 사라질 것이고 비용도 각자가 분담하는 더치페이가 나타날 것이다.
식사와 술자리를 통한 소통의 장이 점차 없어질 것이다.
기업의 공직자와 언론인들을 상대로 한 접대 문화가 크게 바뀔 것이다.
언론의 광고·협찬 수주전도 현재와는 다른 형태를 띨지 모른다.
공직자들과 언론인들은 또 김영란법에 걸릴까봐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공직사회와 정치권 등이 언론의 취재를 거부할 명분이 생겨 언론의 취재 영역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골프장과 술집, 5만원 안팎의 음식점들은 손님이 확 줄어들 것이다.
법이 시행되면 이들 업계에서부터 김영란법에 대한 불만과 한숨소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밤 문화, 심야·새벽시간까지 흥청망청거리는 풍토도 많이 개선될 것이다.
소비의 한 축인 선물 주고받기 문화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명절 선물 특수를 누려온 백화점들과 마트들에겐 직격탄이 된다.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경제성장률이 1~2%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영란법은 검찰과 경찰에게 또 하나의 칼자루를 쥐어주는 셈이 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100만원 초과시 직무관련성을 검찰이 따지지 않게 됐지만, 검찰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수사 개시 자체를 검찰이 얼마든지 선별할 수 있다"며 "검찰 개혁과 관련된 제도 마련이 병행되지 않은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도 "적용대상이 광범위하고 금지행위의 한계가 뚜렷하지 않게 되면 수사기관의 표적수사, 자의적 법집행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며 자칫 "'검·경 공화국 조성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미경 의원은 "김영란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검찰 공화국이 될 수 있다"며 "지역 얘기를 듣고 관련 민원을 행정부처에 전달하는 것조차 불법이 된다"고 말했다.
비판 언론에 대한 보복·재갈물리기 수사를 할 수 있는 등 수사기관들이 법을 악용할 소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검사 출신 의원들의 분석이다.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수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제기되는 우려 목소리다.
여야는 세월호 참사로 여론이 악화되자 당초 김영란법 원안에도 없던 사립학교 교원들과 언론인들을 법에 끼워 넣은 것이다.
언론인은 공직자도, 준공직자도 아닌 민간인이다. 다만 공공성을 근간으로 하는 직업군이다.{RELNEWS:right}
한 중견 언론인은 "국회가, 특히 야당이 법을 통과시키라고 촉구한 언론에 맛 좀 봐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언론인들을 공직자와 동일하게 취급해 처벌 법규를 만드는 나라는 없다.
또 기준이 모호한 '공공성'을 잣대로 언론과 사학 교직원 등을 포함시키면서 위헌 소지를 여전히 남겼다.
실제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 임·직원 등 다른 분야는 빠져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