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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규제 완화가 부른 '전원일기'의 종말

기자수첩

    [뒤끝작렬] 규제 완화가 부른 '전원일기'의 종말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1990년에 9월 9일에 첫 방영된 KBS의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배경은 경기도 김포시다. 실제 1기 드라마 촬영도 김포시 고촌읍에서 이뤄졌다.

    공교롭게 김포시에는 양촌읍도 있다. 지명 때문인지 MBC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의 배경인 '양촌리'가 이곳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 촬영은 김포가 아닌 경기도 양주군과 남양주시, 충북 청원군 등에서 진행됐지만 말이다.

    비록 수도권 대도시 인근에 위치한 농촌의 모습이었지만, 당시 드라마에 비친 김포의 모습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에 가까웠다. 펼쳐진 논밭과 길게 늘어선 비닐하우스, 경운기가 지나가는 농로 등은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배경이었다.

    논 일을 하던 양촌리 김 회장님이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넉넉한 웃음으로 손 흔들어 줄 것 같던 전원일기 속 농촌의 모습은 그러나 최근 김포시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김포시 양촌읍은 김포 한강 신도시와 붙어있어 이제 아파트 촌으로 변모 중이다. 그리고 양촌읍에서 불과 2~3km 떨어진 대곶면 거물대리(里)에는 펼쳐진 논밭 대신 그 위에 공장들이 어지럽게 들어서있다.

    그 농경지 위에 들어선 공장 62곳이 최근 환경부 기동단속반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거물대리에 자리잡은 공장의 72%, 10곳 중 7곳이 환경법령을 어기고 있었다.

    공장마당에 쌓아둔 분진 폐기물이 바닥으로 줄줄 새고 있는 모습 (환경부 제공/ 노컷뉴스)

     

    공장 마당에는 쌓여있는 분진폐기물이 바람을 타고 어지럽게 흩날렸다. 그 분진은 또한 빗물에 씻겨 인근 토양과 하천으로 스며들었다. 폐수처리시설이 없는 공장에서는 폐기름이 흘러내렸다.

    한 공장에서 무허가로 보관하고 있던 폐기름에는 PCBs라는 발암성 독성물질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PCBs는 자연분해가 어렵고 생체 기형을 유발할 수도 있는 물질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지난해 여름, 한쪽 눈이 허옇게 변하고, 왼쪽 뒷다리가 뒤틀린 기형 개구리가 출현했다. 자연의 경고가 시작된 것이다.

    김포 거물대리 주민이 촬영한 기형 개구리. 한쪽 눈에는 눈동자가 없고, 왼쪽 뒷 다리가 뒤틀렸다.(사진제공=환경TV)

     

    주민들도 각종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150명이 사는 마을에 9년 동안 22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지금도 쉼 없이 날아드는 먼지로 생활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거물대리로 들어왔던 한 주민은 견디다 못해 도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전원일기'가 종말을 고한 이면에는 규제완화로 인한 난개발이 있다. 김포시 거물대리는 '계획관리지역'이다. 이곳에는 소규모 공장의 입주가 가능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논 한가운데에 그냥 공장 지어서 들어갈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계획관리지역에도 특정유해물질 배출업체는 입지가 제한된다. 그러나 제한 규정은 그저 문자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번 단속에서 특정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 쏟아졌다. 폐수배출시설 자체를 신고하지 않은 공장도 수두룩 했다.

    지자체는 인력부족으로 배출시설을 신고한 사업장을 다니면서 단속하는 것도 벅차다고 했다. 신고를 하지 않고 몰래 폐수나 배출가스를 내놓는 공장은 단속 리스트에도 없는게 현실이라는 얘기다.

    환경부에서는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직이 되면서 환경보다는 개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김포가 2006년부터 공장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울 인근에서 폐쇄되는 공장들을 유치해 왔고, 그러다 보니까 인허가가 조금 소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005년, 정부가 계획관리지역에 소규모 공장 신설을 허용한 직후다. 거물대리의 난개발이 시작됐고 전원일기의 풍경은 사라졌다.

    환경을 무시한 개발의 댓가는 그곳에 사는 그 지역 생태계는 물론 그 안에 속한 주민들에게도 혹독한 고통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3년에 실시한 거물대리에 대한 예비역학조사결과, 원주민 150명이 사는 마을에서 지난 9년 동안 22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기대사망자 수 7.6명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눈동자가 없어지고 뒷다리가 틀어진 개구리는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올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계획을 통해, 비도시지역의 관리계획지역에 들어설 수 있는 공장의 허용업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지규제를 더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오염수준이 낮은 업종으로 국한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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