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이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 논란에 휩싸였다.
적용 범위도 문제지만 가뜩이나 얼어붙은 국내 소비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과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농축산물 유통 시장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과일과 축산물의 20% 이상이 추석과 설 명절 기간에 유통되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선물 소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농민과 농업단체들은 김영란법이 자유무역협정(FTA) 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험할 수 있다며 걱정하는 분위기다.
◇ 명절 기간 과일, 축산물 유통량…국내 생산량의 각각 50%, 25% 육박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국내 사과 생산량은 49만 톤, 배는 28만 톤에 달했다.
사과와 배는 저온 창고 등에 보관돼 1년 내내 유통되지만, 추석과 설 명절 기간에 절반 정도가 소비된다.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따르면, 사과와 배의 월별 반입 비중은 평균 3.0%~6.8%에 이르지만 설 명절 기간에는 24.9%, 추석 기간에는 24.0%가 반입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명절 기간에 유통되는 사과와 배는 주로 제수용품으로 쓰이지만, 선물용이 최소 절반 정도는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체 사과와 배의 25% 정도가 명절 선물용으로 유통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소의 경우도 지난 2013년 모두 107만 마리가 도축됐으며, 이 가운데 설과 추석 명절이 포함된 1월과 9월 두 달 동안 24만 마리가 도축돼 22.7%를 차지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처럼 명절이 포함된 달에 도축된 소의 절반 정도는 선물용 세트로 포장돼 판매됐다고 봐야 한다"며 "결국 국내 소 도축물량의 10%가 명절 선물용으로 유통된다"고 말했다.
◇ 김영란법 시행되면, 과일선물 관행 위축 전망 현행 공직자윤리강령은 식사제공과 선물은 3만원, 경조사비는 5만원까지 인정해주고 있다.
따라서, 다소 가격 차이는 있으나 10kg 한 상자에 5만원 하는 사과와 7.5kg 한 상자에 3만원 정도 하는 배의 경우 공직자들에게 명절 선물용으로 적당했다.
심지어 10kg 한 상자에 15만원이 넘는 백화점 포장 사과의 경우도 선물용으로 부담 없이 주고받았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하지만, 김영란법이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0월부터 본격 시행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대가성이 없으면 100만원까지는 과태료 처분만 받으면 되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입장에선 법이 강화된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과일 유통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공무원 100만명과 산하 공공기관, 사립학교, 언론사 임직원 등 60만 명을 더해 대략 16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설과 추석 명절 때 각각 1개씩 최소 2개의 과일 선물상자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320만 상자가 된다.
이는, 국내 전체 사과와 배 생산량의 3.1%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이 명절 때마다 2상자씩 받는다면 6.2%로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명절 과일선물 시장에서 큰 고객인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선물제공이 중단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과수농가에 돌아갈 것이 뻔하다.
천안 배 원예농협 심훈기 상무는 "가뜩이나 한미, 한중 FTA 때문에 과수생산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과일 선물이 급감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렇게 되면 과일 소비가 줄어들게 되고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결국 피해는 농민들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 축산, 화훼 농가는 직격탄김영란법 시행으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가는 소를 키우는 축산농가와 꽃을 키우는 화훼농가다.
명절 기간에 소고기 선물세트의 경우 한 상자에 보통 15만원에서 20만원에 판매돼, 공직자윤리강령이 적용되는 김영란법에 크게 저촉되기 때문이다.
국내 소 도축물량의 10%가 명절 선물용으로 유통되고, 이 가운데 공직자와 공공기관, 언론사 직원들에게 최소 2% 정도가 공급된다고 보면 소사육 농가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화훼농가도 김영란법을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실제로, 화훼의 경우 공직자윤리강령에 선물 사례로 적시된 이후 소비가 급격하게 줄었다.
가지째 꽃을 꺾어 파는 절화류의 경우 1인당 소비금액이 2005년 9천559원에서 2011년 4천501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절화류 소비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화환이 사치 풍조를 조장한다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선물용 소비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절화류 재배 농가는 지난 2011년 4,566개에서 2012년에는 3,326개로 무려 27%나 감소했다.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꽃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농식품부 이영식 원예경영과장은 "과일의 경우는 김영란법이 시행돼도 관행상 선물제공이 급격하게 줄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화훼의 경우는 선물용 가격이 비싼데다 사치품으로 인식돼 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공직자윤리강령에서 화훼를 선물 예시에서 삭제해 줄 것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요청한 상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현재 공직자윤리법 안에 있는 윤리강령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공무원 윤리강령에 3만원, 5만원, 10만원(화환)이라고 돼있는데 현실에 안 맞는 측면이 있다"면서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