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자료사진)
유신시절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던 백기완(83) 통일문제연구소장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이번 판결은 원고 일부 승소였던 1심을 뒤집은 것으로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며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민사33부(이경춘 부장판사)는 백 소장과 부인 김정숙(82)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 발령 행위가 그 자체로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백 소장을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가 지나 소멸했다고 봤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6월 "국가기관이 헌법상 의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가해자가 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백 소장 부부에게 모두 2억 1,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달 최모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 발령행위 그 자체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 무효로 선언됐다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였다고 설명했다.
백 소장은 1974년 1월 개헌청원서명운동본부 발기인으로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뒤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