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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곳곳에 아직도 세월호가 떠다닌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박재홍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상에서 유가족들이 침몰 위치를 표시한 부표를 향해 헌화하고 있다. (진도=윤성호 기자)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이 지난 13일 장애인거주시설인 공주 누리재활원을 방문해 모의 대피훈련에 참여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긴급상황을 벗어나기 힘든 장애인 거주시설이나 노약자 시설의 대피 훈련에 장관이 참여한 것.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달라진 모습 중 하나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시점이지만 그 해 4월에는 다른 참사들도 있었다.

    고 송국현 씨 사망 사고. 혼자서는 거동이 힘든 장애인 송 씨는 장애 3급이라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자격을 얻지 못했다. 지난해 4월 13일 집에 갑자기 불이 났고 빠져 나오지 못해 중화상을 입은 뒤 4월 17일에 사망했다.

    고 오지석 씨 사망 사고. 항상 호흡기를 착용해야 숨을 쉴 수 있던 호흡기 장애인이었다. 4월 16일 활동보조인이 없을 때 호흡기가 빠졌고 심정지, 뇌손상이 와 중태에 빠진 뒤 2달여의 투병 끝에 사망했다.

    전남 장성 요양원 화재 사고, 지난해 5월 28일 노인 치매환자가 대부분이던 요양원에 화재가 발생해 21명이 숨졌다. 새벽 당직근무자 2명으로는 사람들을 제대로 대피시킬 수 없어 희생이 컸다.

    경북 칠곡 공장 기숙사 화재. 올 1월 8일 발생한 사고다. 장갑공장 1층의 불이 2층 기숙사로 옮겨 붙어 재활의 꿈을 키워가던 장애인 노동자 4명이 숨졌다. 휴일이라 기숙사를 관리하던 사감이 자리에 없고 장애로 민첩한 행동이 어려워 피해가 컸다.

    장애인이나 노약자는 비상계단을 찾아 신속하게 내려갈 수도 없고 완강기가 설치돼 있어도 스스로 완강기를 사용할 수 없다. 순간적으로 이곳 저곳 살펴 본 뒤 안전한 길을 찾는 판단도 상대적으로 어렵고 이동시간도 상대적으로 길고 건물구조가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쉽게 열고 부수고 빠져 나갈 수 없다. 재난 상황에서의 대피가 비장애인이나 건장한 사람과 비교할 때 대단히 취약한 ‘재난 약자’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세월호가 떠다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장애인거주시설 피난 매뉴얼을 마련했고 ‘시설별 자체 피난매뉴얼'을 작성해 시설마다 비치하도록 했다. 그리고 위험 시 대피 매뉴얼도 장애인거주시설, 어린이집, 아동복지시설, 노인요양시설, 정신보건시설 등으로 나누어 특화 매뉴얼로 만들었다.

    문제는 분기별 1회 안전교육 및 연 2회 소방훈련 등 장애인 노약자들에게 예방과 위험에 대비한 기본행동, 위험에 처했을 때의 대처 요령 등이 충분히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정된 시설 몇 곳에서 시범훈련 해 보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 모든 시설이 수시로 훈련과 교육을 실천하도록 감독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좋은 매뉴얼의 예로 흔히 미국의 모건스탠리를 이야기한다. 2001년 9.11테러 사건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한 모건스텐리의 직원 2,687명이 거의 모두 안전하게 피난해 모건스텐리의 기적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모건 스탠리는 자사의 상황에 맞춘 매뉴얼을 가지고 실전처럼 1년에 4차례 씩 대피훈련을 반복했다는 것.

    이처럼 재난대응 훈련은 꾸준히 반복되어야 한다. 몇 군데 시범 모의훈련만 해서는 안 된다. 내일(16일) 오후 2시 여의도에서는 “재난 발생 시 장애인 대피방안 토론회”가 열린다. 장애인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재난 약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토론회의 내용에 정부 당국이 주목해 주기 바라고 또한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논의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걸 따져도 2010년 “장애인 피난 설비 확충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다른 곳도 아닌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바 있다. 참사와 희생 뒤에 여론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시급히 다루어야 한다.

    불난 집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숨진 송국현 씨의 꿈은 혼자서 마트에 물건 사러 가는 것이었다. 꿈이 실현되기는커녕 이 꿈마저도 안전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국가의 존재 의미가 무언지 물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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