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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금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조사실. 수사관이 9살 진솔이(가명·여)의 팔에 난 멍자국 사진을 보여주자 아빠 박모(60)씨는 고개를 떨궜다.
"애가 집에 안 들어오고 밖으로만 쏘다녀서… 일하다 말고 찾으러 다녔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내가 애를 때렸어요. 아휴…"
늦은 나이에 얻은 딸 진솔이는 박씨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었다. 하지만 지적장애 3급인 진솔이를 보살피는 일은, 아내가 집을 나간 뒤 오롯이 박씨의 몫이 됐다.
하루에도 여러번 집을 나가 밤 늦게까지 거리를 헤매는 딸을 찾아 돌아오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박씨의 손찌검이 이어졌다.
"나도 사람인데 힘들어서… 그런 날은 나 혼자 차에서 많이 울었어요. 나 좀 어떻게 도와주세요."
박씨가 아동학대 혐의를 인정하면서 경찰은 진솔이를 아빠로부터 즉각 격리시켰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데다 화를 참지 못하는 진솔이를 선뜻 받아주겠다는 보호시설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어차피 아이가 돌아갈 가정의 '환경'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박씨뿐만 아니라 진솔이의 치료도 시급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노력 끝에, 진솔이는 현재 서울의 한 아동심리전문병원에 입원해 충동조절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
◇ 장애아동 지원기관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인프라 구축 '절실'5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해 9천 823건. 이 중 진솔이처럼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사례는 8천 68건으로 전체의 8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씨와 같이 장애아동을 홀로 돌보며 생계까지 책임지는 한부모 가정의 경우,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를 아이를 통해 해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RELNEWS:right}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최윤용 상담원은 "아버지 혼자 양육과 가사를 모두 책임지다보니 스트레스를 잘못된 방법으로 푼 것 같다"며 "이런 경우는 가학 성향이 있다기보다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학대"라고 설명했다.
부모가 일터에 나간 동안 아이를 집 안에 방치하는 이른바 '생계형 방임'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
최 상담원은 "장애 아동을 돌봐줄 아동보호시설도 마땅치 않다"며 "한부모 가정의 장애 아동을 돌봐줄 수 있는 사회 인프라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황은숙 회장도 "좋은 아빠가 될 수도 있는데 부족한 사회 서비스 때문에 학대 가정이 된 셈"이라며 "한 달 7만원 양육비 지원 이외에도 한부모 가정을 위한 의료지원과 주거지원 등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