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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론] 솔로강아지는 왜 불편했을까?

    • 2015-05-12 17:21

     

    만 10살짜리 초등학생이 쓴 시집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솔로강아지'라는 제목의 이 시집은 총 58편의 시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중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작품 하나가 언론에서 주목을 받으며 논란은 시작되었습니다. 엄청난 악플과 여론 재판 끝에 결국 이 꼬마 시인의 시집은 전량 회수, 폐기될 운명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꼬마 시인의 부모 측이 이 조치에 반대해 법적 대응에 나섰고 아직도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아픈 민낯을 보여주면서 몇 가지 아주 중요한 과제를 던졌습니다. 우선 이 논란은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훼손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후략)"라는 문구 자체는 과격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시적 표현은 이미지의 충돌과 은유적 상상력을 통해서 숨겨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적 도구가 아닙니까? 더구나 시인의 다른 시와 다르게 겉으로 드러나며 반복된 각운은 역설적으로 낮은 울음소리처럼 느껴지며 메시지의 절실함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시적 화자는 학원을 강요하는 부모와 사회에 비해 철저히 약자입니다. 그 고통이 통렬한 언어나 이미지로 구현되는 일은 오히려 정서의 돌파구를 마련해서 사회를 폭력으로부터 정화시키는 기능도 있지 않습니까? 고도로 정제되지 못한 돌직구라 비판할 수는 있어도 읽지 못할 패륜적인 배설, 마치 일베에서와 같은, 저열한 막말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윤리적으로 계도하기 위해 이런 표현이 자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필이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 논란이 더욱 증폭된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동학대와 노인학대는 늘어가는 추세인데, 아동학대의 80%, 노인학대의 75%가 가족으로부터 행해집니다. 이런 패륜적 상황이, 부양과 양육의 모든 책임을 부부와 직계손에게만 묻고, 개인대 개인의 무한 경쟁을 미덕으로 추앙하고 있는 이 사회 때문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극대화한 어른들이 과연 10살짜리 아이의 시 하나를 패륜이라 사냥할 자격이 있을까요? 어쩌면 이런 마녀사냥식의 비난 뒤편에선 자격지심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꼬마 시인의 시집에는 같은 약자로서 느끼는 정서적 공유가 강아지로, 동물원의 표범으로, 심지어는 작은 모기에까지 확대되어 있습니다. 만 10살짜리가 감히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 자부하는 자들보다 더 깊고 넓은 공감대를 느끼며 고뇌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런 문학적 고뇌에 우리 사회는 패륜이란 일방적 평가를 덮씌워 놓고 자기검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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