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이고 미개했을 것으로만 생각되는 원시시대에, 오히려 남녀는 평등한 존재였다는 의외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성평등 개념은 현 세대에 들어서야 확립됐다는 인식과 달리, 남녀 관계가 원래부터 평등했다는 내용이다.
1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마크 다이블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농경사회 이전의 수렵사회에서 남녀가 똑같은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원시 필리핀 사회에서, 여성은 사냥과 꿀 채취 역할 등을 맡았고 남성과 여성은 공동체에 같은 양의 식량을 공급했다. 일부일처제가 당연한 규범이었으며, 남성도 활발히 육아를 담당했다.
다이블 박사는 "수렵사회는 지금보다 더 마초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을 것으로 예상해왔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라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성평등이 깨진 오늘날의 남성중심 사회는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후천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수렵사회가 끝나고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식량 등 자원 축적이 가능해지자, 거기서부터 불평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그때부터 남성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두기 시작했고, 그럼으로써 여성보다 더 많은 자손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이블 박사는 더 많은 개개인의 상생으로 인류 진화를 이끈 힘이 바로 초기 수렵사회의 '성평등'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밝혔다. 생존과 공동체 성립 과정에 있어서 성평등이 매우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콩고와 필리핀에 존재했던 두 수렵 부족의 가계도를 분석한 결과, 부족원들은 두 곳 모두 20명 안팎으로 유지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이블 박사는 "이 같은 형태의 공동체가 한 명의 개인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집단을 승계하는 공동체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며 진화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남성이 집단 내에서 여성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면, 이 남성과 혈연관계에 있는 친지들이 모여 세력을 형성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하지만 한 가족에서 남녀가 평등한 영향력을 가지면 그럴 일이 적어진다는 분석이다.
초기 사회의 성평등이 비혈연관계인 이들과도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공동 생활을 해나가게 한 '진화력'의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다이블 박사는 "이 같은 성평등주의는 인간을 인류 조상격인 다른 여타의 동물들과 확실히 차별화시키는 매우 독특한 요소"라고 말했다.
특히 인류 진화 요인인 '기술'과 '혁신'은 초기 인류의 개방적인 면모 덕에 더 널리 공유되고 전파될 수 있었다.
일례로 공격적이고 수컷 중심적이며 위계질서가 확실한 침팬지 사회에서는 지속가능한 상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새로 습득한 기술을 승계할 성인 침팬지가 부족했고 그 결과 공동체의 연속성도 보장되지 않았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안드레아 밀리아노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인간의 차별적인 특성에 관한 근거가 초창기 인류 진화 과정에서 비롯된 '성평등'에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