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선생 (자료사진)
조선시대에는 '괴담'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요언(妖言)이라고 했다. 괴담(怪談)은 '괴상한 이야기'이고 요언은 '인심을 혼란하게 만드는 요사스러운 말'이라고 사전은 적고 있다.
괴담과 요언은 말맛의 차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맥락적으로 유사성을 갖는다
요언을 가장 잘 묘사한 작가가 소설 <흑산>을 저술한 김 훈 선생이다. 흑산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고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천주교 박해가 한창이던 시기 서양의 큰 배들이 화포로 무장하고 조선의 항·포구에 나타났다. 그 중의 요망한 말은 "이제 곧 때가 이르면 서양의 큰 배들이 무수히 바다를 건너와서 인천·부평·안산·남양에 정박하면서 조정을 겁박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리라"는 것이었다.
김 훈 선생은 이렇게 묘사한다.
"요언은 고을마다 창궐했다. 모여서 지껄인 자와 듣고 옮긴 자를 찾아내서 가둘 수 있었으나 애초에 지어내서 퍼뜨린 자는 잡을 수가 없었다. 지어낸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썩은 고기에 구더기가 슬듯이 저절로 생겨나서 퍼진 것이라고, 비변사의 늙은 정육품이 민정을 살피고 돌아와서 대비전에 보고했다.
당상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언을 퍼뜨린 자를 붙잡아서 가두고 때리면, 그가 맞은 매는 요언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물증이 됐다. 매는 요언을 부채질했다. 당상들은 매와 요언의 관계를 알았지만 말하지는 못했다."
김 훈 선생의 묘사가 존경스럽다.
정부가 메르스 발생 18일만에 확진 환자가 발생한 6곳과 경유한 18곳 등 24곳 병원 이름을 전면 공개했다. 병원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니 정부가 '괴담'이고 '유언비어'라 참칭했던 SNS내의 병원이 거지반 포함됐다.
정부는 메르스 발병초기 괴담부터 단속하겠다며 국민을 겁박했다. 여당도 덩달아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유포되는 ‘메르스 괴담’에 대한 강력 단속을 주문했다.
SNS시대 '괴담'과 조선 말기 정국이 혼돈스럽던 시절 '요언'의 차이는 무엇일까?
엊그제 백주대낮 강남 한복판에서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고 나타난 SNS사진을 보고 놀란 강남 대치동 엄마들은 '괴담'에 놀아난 것일까? 서울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감염자가 있다는 SNS 글은 '요언'이었고 국민들은 그 요언에 감쪽같이 속은 걸까?
조선 말과 2015년 서울의 사회관계망은 천양지차다. SNS글이 정확하고 명확한 '팩트'를 적시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팩트에서 크게 벗어난 허무맹랑한 주장도 아니었다.
해당 병원에 근무하는 보건 의료인 모두가 입을 꾹 닫지 않는다. 그들도 국민의 가족이다.
메르스 확산을 '당상들'이 처벌한다고 감출 수 없다. 그러나 당상은 18일동안 그 짓을 했다. 매로 다스리면 요언의 진실성을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200년이 지나고 있지만 그들의 사고가 놀랍고 엉뚱하다.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