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은 안 좋은 쪽으로만 일이 꼬이는 상황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샐리의 법칙'(Sally's law)은 그 반대죠. 마치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돕는 것처럼, 모든 일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슬슬 잘 풀릴 때는 샐리의 법칙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요.
메르스 사태라는 국가 위기 국면을 한 달 넘게 지켜보면서 '샐리'와 '머피'를 떠올린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정부, 특히 보건당국은 '샐리의 법칙'이 통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내에서 27명의 사망자를 낳을 때까지 이처럼 번번이 방역에 실패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방역을 펴야 한다는 지적이 초반부터 줄기차게 나왔지만, 여전히 '가설'에 집착하는 당국의 행태에 의아해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왜일까요. 문제는 당국 입장에선 근거 없이 낙관론을 펼친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낙관론을 주장할만한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당국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부분은 "'과학적 근거'에 따라 방역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한달간 이미 수 차례 방역망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과학'에 근거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입니다.
당국이 내세우고 있는 과학적 근거의 대표적인 예가 '최대 잠복기 14일' 이론입니다. 격리자들의 격리 기간 및 집중관리병원 13곳의 통제 기간 등 방역 체계는 모두 잠복기 14일 이론을 근거로 정해졌습니다.
이미 이 이론이 현실 방역에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는 속출하고 있습니다. 잠복기를 넘긴 뒤에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벌써 13명이나 되고, 21일에는 격리 기간 14일이 지난 뒤에야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도 2명이나 나왔습니다.
심지어 '2차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은 잠복기가 종료된 지난 12~13일 이후로도 계속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잠복기 끄트머리에 또 확진자가 나와 다시 새로운 '감염 싸이클'이 시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거죠.
이 병원은 오는 24일로 잠복기 14일이 경과하면 부분 폐쇄도 종료될 예정입니다. 비격리 대상자나 격리 조치하지 않은 병동에서 거짓말처럼 확진자가 나오는 경우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말이죠.
안팎에서는 이미 잠복기를 더 길게 잡으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확진자 175명에 격리 당해본 국민도 1만 3천명에 육박하는 초유의 사태에서, 아무리 과학에 근거해서 하고 있다 한들 '그들만의 방역론'에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요.
메르스는 지난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생했고, 기껏 축적된 데이터라고 해봐야 3년 분량이 채 안 되는 신종 감염병입니다. 굳이 연구 결과를 운운하며 소극적인 방역을 펼치는 데서 올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샐리의 법칙'보다는 '머피의 법칙'을 토대로 방역을 해도 모자랄 판국이란 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