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살 국정원 직원 임모씨. 두 딸의 아버지고 사이버 안보 전문가라는 것이 임씨에 대해 알려진 전부다.
20년간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임 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누구를 위해서 생명을 안타깝게 던졌을까?
임씨의 유서에 따르면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 합니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별 잘못이 없게 된다. 그런데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걸까?
임씨는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켜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임씨에게는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이나 선거관련 불법행위보다는 '국정원의 위상'이 더 중요하고 무거웠다는 얘기가 된다. 또 스스로 자료를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국정원 출신의 국회 정보위원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국정원은 '이 직원이 4일 간 잠도 안자고 일하면서 공황상태에서 착각하지 않았겠느냐'라고 자료 삭제에 대한 해명을 전하고 있다.
이는 국정원이 임씨에 대해 내부의 감찰까지 하면서 4일간 잠도 안재우고 해당 자료를 삭제하도록 방치 내지는 묵인했다는 걸 인정하는 대목으로 읽힐 수 있다.
이철우 의원은 브리핑에서 "이 직원은 자기가 어떤 (해킹) 대상을 선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부서에서 해킹) 대상을 선정해 이 직원에게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에 (프로그램을) 심는다든지 그런 작업을 하는 기술자다. 대테러 담당자 이런 사람들에게 요청이 오면 이관을 할 뿐이다"라고 설명을 했다.
상부에서 또는 다른 부서에서 요청이 오면 해킹을 직접 실행하는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실행의 책임이 임씨에게 있겠지만 실제 책임은 불법해킹을 하도록 한 상급자나 지휘라인에서 져야 한다.
그런데 임씨가 모든 책임을 떠 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씨는 유서 마지막에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썼다.
이를 뒤집어보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달라"는 건 임씨 자신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주저함과 회피함'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처해 달라"는 얘기도 국정원 지휘부에 대한 일종의 불만 표시로 읽힌다. 특히 이철우 의원이 "(임씨가 해킹)대상을 직접 선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부분과 임씨가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부분은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