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 영상 캡처)
미국에서 벌어진 '생방송 총격' 사건은 증오범죄(Hate Crime)의 성격을 띠고 있다. 범인이 지난 6월 벌어진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을 들며 '직접적인 동기(Tipping point)가 됐다'는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앞서 6월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시내에 있는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21살의 백인 청년 딜런 루프는 함께 성경공부를 하던 흑인 신도 9명을 갑자기 권총을 쏴 살해했다. 그는 "흑인들은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소리 지르며 범행을 저질렀다.
미국의 증오범죄는 KKK단의 존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뿌리가 깊다. 그러나 2009년에야 '증오범죄예방법(The Mathew Shepard and James Byrd Jr. Hate Crimes Prevention Act)'이 연방법으로 제정되면서 가중 처벌의 길이 열렸다.
증오범죄 희생자들의 이름을 앞에 내건 이 법의 제정은 1998년에 잇달아 일어난 두 사건으로부터 촉발됐다.
증오범죄 희생자인 제임스 버드 2세(왼쪽)와 매튜 세퍼드.
1998년 6월 7일의 더운 여름밤, 텍사스주의 재스퍼시에서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49살의 제임스 버드 2세는 친구의 집에서 파티를 한 뒤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홀로 걷던 그에게 백인 3명이 픽업트럭을 타고 다가와 집까지 태워 주겠다고 제안했고, 동네에서 오가다 본 사람들이라 별 의심없이 차에 올랐던 그는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백인우월주의자였던 로렌스 브루어(31세), 숀 베리(24세), 존 킹(23세)은 그를 한적한 시골 길로 데려가 마구 때리고 몸에 오물을 뿌렸다. 그리고 체인으로 발목을 감아 그를 픽업트럭 뒤에 매달고 3마일 가량을 달려 결국 그가 끔찍한 모습으로 숨지게 했다. 존 킹과 함께 사형을 언도받았던 로렌스 브루어는 2011년 9월, 형이 집행되기 전날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자면, 다시 그러라면 그럴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존 킹에 대한 사형은 아직 집행되지 않았으며 숀 베리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제임스 버드 사건 이후 넉 달쯤이 지난 10월 6일의 쌀쌀한 가을밤, 와이오밍주 라라미시의 한 술집에서 21살의 백인 청년 매튜 세퍼드는 자신들을 동성애자라고 속이고 접근한 애론 맥키니(22세)와 러셀 핸더슨(21세)에게 차로 납치돼 시 외곽의 인적없는 농장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를 권총으로 위협하며 가진 돈을 뺐고 마구 때린 뒤 농장의 나무 울타리에 묶어둔 채 달아났다. 18시간 후에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눈물자욱을 제외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혼수상태에서 발견된 그는 결국 6일후에 숨졌다. 범인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때문에 그를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조사됐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FBI의 2013년 증오범죄 통계. 인종적 편견에 의한 사건이 48.5%에 달한다. 증오범죄는 최근 다소 감소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빈번하고 강력한 범죄다. (표=FBI 증오범죄 통계 사이트)
미국의 증오범죄방지법에서 규정하는 증오 범죄는 '인종, 성별과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 종교, 장애,민족 등에 바탕을 둔 편견에서 기인한 피해자에 대한 혐오가 주된 동기로 작용한 범죄로, 살인, 폭행, 강간, 위협, 방화, 손괴 등을 포함한다.'(대검찰청 연구보고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외국사례 및 대처방안 연구' 중, 2013년 10월 간행)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증오범죄에 대해 '피해자나 피해자 그룹이 가해자 자신과 다르다는 인식 내지 사실이 전체든 일부든 동기가 돼 발생하는 범죄로, 가해자 자신에게 특별한 피해가 없는데도 피해자가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혹은 성적 지향이 특이한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동기가 돼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라고 규정한다.(경상대학교 법학과 정도희 교수의 논문, '다문화사회 증오범죄 방지를 위한 제언' 중, 법학연구 21권 1호, 2013년 8월 경상대 법학연구소 간행)
결국 증오범죄는 편견에 의해 갖게 된 혐오를 폭력을 통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드러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2년에 발생한 의정부역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의 범인이 평소에 중국인 노동자나 탈북자들 때문에 자신의 일감이 줄었다고 적개심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돼 외국인 혐오가 주된 동기는 아니었지만 범행의 한 원인이 된 사례로 지목된다.
국내 외국인 체류자 수(표=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연보)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연보를 보면 2014년말 현재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은 불법 체류자를 제외하고 179만 7,618명으로 전 해보다 14%가 늘었다. 더욱이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다문화가정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조화로운 다문화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각적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