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최경환 경제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활성화 대책이 발표됐다. 이때부터 환경부 등 관계기관이 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라는 방침이 명시됐다. (자료=기획재정부)
환경부가 각종 개발사업의 자문 역할로 나서면서, 본분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조건부 승인 결정이 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뿐 아니라, 한강협력 계획 마스터플랜을 짜기 위한 한강 TF 등 투자활성화 차원에서 추진 중인 각종 개발사업에 환경부가 자문역할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사업의 환경영향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환경부는 그동안 국토부나 산업부 등 개발부서와는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환경부가 사사건건 걸고넘어진다는 볼멘소리도 심심찮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개발사업을 할 때는 이제 환경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관행이 정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최경환 새경제팀의 등장...변고의 시작그러나 이런 기류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해 8월, 최경환 경제팀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관광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한동안 제동이 걸렸던 케이블카 설치사업에 다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두번이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부결시킨 환경부였다.
지난해 8월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경부가 이런 문제(케이블카)에 대해서 소극적 입장을 가져왔지만,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서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 앞으로는 잘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당시 투자활성화 대책에는 환경부 등 관련부처가 직접 나서서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하도록 친환경 공법을 적용하는 등 부적합 사유를 개선하고, 심지어 국립공원위원회 통과를 위해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한 자문까지 해주라고 방향을 내놓기도 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노선도 (사진=환경부)
그리고 이런 방침은 고스란히 시행됐다. 지난해 11월부터 문화체육관공부를 중심으로 환경부와 국토부, 기재부 등이 참여하는 ‘친환경케이블카 확충 TF팀'이 구성돼.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TF팀 회의록을 보면,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부처들은 설악산 케이블카의 노선 선정 때부터 자문을 해주기 시작해, 문화재 현상변경과 산지전용허가, 환경영향평가 등 후속절차도 조속히 진행해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에 완공을 추진하기로 합의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왔지만, 강원도와 양양군의 케이블카 사업 추진 일정까지 일일이 챙겨가며, 사업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왔던 셈이다.
아울러 환경부는 한강을 관광자원으로 개발, 활용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한강 TF팀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강 TF 첫 회의가 열렸는데, 이 때 정연만 환경부 차관을 비롯해 국토부와 문체부 차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TF의 부처별 구성은 친환경케이블카 TF와 흡사하다.
한강협력계획을 통해 발표된 여의도 일대 관광자원화 계획. 여기에도 환경부가 TF팀에 참여하고 있다. (자료=기획재정부)
◇ 환경부, "개발부처 견제" vs 환경단체 "본분 망각"투자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개발사업에 환경부가 잇따라 관여해, 자문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환경부 관계자는 “개발사업이 산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개발사업 초기부터 참여해 친환경적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과거부터 지방청 차원에서도 사업예정 토지에 대한 사전 컨설팅 등을 해온 관행이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사업의 환경영향을 최종 심의해야할 환경부가 개발사업 추진 단계부터 사업자에게 자문을 해주는 것은 본문을 망각한 처사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출제위원이 입시과외를 해준 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녹색연합 황인철 평화생태팀장은 “심의를 하는 기관이 사업추진 기관과 협의를 하고 컨설팅을 하는 것 자체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것이고 심각한 절차적 하자”라고 주장했다. 황 팀장은 “양양군이 (국립공원위원회의) 승인도 나기 전에 실시설계 등을 추진한 것이 결국 환경부의 암묵적인 사업추진 약속 아래 이뤄졌다는 것도 이번에 증명이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RELNEWS:right}
환경운동연합 맹지연 국장도 “정부는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따라 심의하면 되는 것”이라며, “누구는 컨설팅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발사업이 친환경적으로 되도록 자문해주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사업이 되는 쪽으로 코치를 해주고 있는 환경부의 모습에서, 과거 4대강 사업 추진 당시 들러리에 불과했던 환경부의 무기력을 다시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