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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올 추석 '구식 장난감'을 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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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올 추석 '구식 장난감'을 사 주세요.

     

    내 유년시절 '장난감'은 검정고무신 두 짝을 서로 구겨 넣어 만든 '고무신 트럭'이었다. 이 '고무신 트럭'을 손으로 잡고, 붕! 부우웅! 소리를 내면서 운전사 놀이를 했다. 그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중학생이 되자 플라스틱으로 정교하게 만든 오토바이와 자동차, 비행기 등의 장난감이 등장하면서 '고무신 트럭'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후 장난감과는 거리가 먼 사춘기를 지나 청년기,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고무신 트럭'은 추억 속으로 영영 사라져버렸다.

    며칠 전 장난감을 사기 위해 수백 명의 어른들이 이름 아침부터 대형마트 앞에 길게 줄을 선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이들에게 인기 절정인 '터닝메카드'를 사기 위해서라고 했다. '터닝메카드'는 우리나라 완구업체가 만든 변신로봇으로 작은 자동차 모양의 장난감에 자석 달린 카드를 대면 순식간에 로봇으로 변신한다. 만화나 영화 속 변신 장면과 비슷해 이 장난감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아이들이 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부모들은 '터닝메카드'를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서지만, 구매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나이가 쉰 살을 넘긴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 중년들이 보기에는 이 같은 세태가 격세지감일 수밖에 없다. 자녀에게 선물할 장난감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백 미터가 넘는 긴 줄을 서야 하고, 그래도 순번이 돌아오지 않으면 배달시켜 마시는 우유를 신청하거나 신용카드를 신규로 개설하면서까지 장난감 '터닝메카드'를 구매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문제는 어린아이들이 선호하는 장난감이 이제 일 년이 못 가 새로운 것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경우 '고무신 트럭'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 초등학생 시절 6년을 다 보냈지만, 요즘 어린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출시되고 유행하는 장난감들 때문에, 아무리 갖고 싶던 장난감이었다고 해도 금방 싫증을 내는 것 같다.

    2013년 어린이날 무렵에는 '꼬마버스 타요'와 '로보카 폴리'가 인기였지만 2014년 상반기에는 변신자동차 장난감 '또봇'이 등장하며 시장을 석권했다. 2014년 하반기에는 새롭게 선보인 '티라노킹'이, 2015년 상반기에는 손목시계 장난감 '요괴워치'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불과 6개월도 안 지나 2015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는 '터닝메카드'가 어린이 장난감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장난감만을 놓고 볼 때 우리 세대가 아주 먼 옛날 구석기 시대를 살았던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한편으로는 어린아이들이 첨단 로봇 장난감을 만지고 노느라, 오감을 통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자연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은 것은 내가 중학생일 때였다. 동화 속에서 '사람처럼 말을 하는' 토끼와 쥐와 홍학과 애벌레와 트럼프 카드를 만났다. 그것들은 책 속 인물들이지만 실제 장난감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환상 혹은 상상의 장난감이었다. 손으로 직접 만질 수도 없고, 부릴 수도 없고, 말을 주고받지는 못해도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그런 환상과 상상이 넘쳐나는 동화 속 장난감들을 통해 무한한 꿈을 꾸었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마구 그려볼 수 있었다.

    '티라노킹' '요괴워치' '터닝메카드'를 만지면서 놀고 성장하는 아이들이 원리와 수리(數理), 속도와 같은 지식을 조금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꿈과 상상을 키워주는 인문학적이고 고전적인 지성과 감성, 사랑의 감정 습득은 더딜 것 같은 염려가 지워지지 않는다. 첨단 기술로 만든 장난감들이 지능 발달을 돕는 장점도 지니고 있지만, 감각적이고 전투적이며 왜곡된 경쟁심을 유발시키는 단점도 숨어 있다. 어린아이들이 맹목적이고 자폐적으로 장난감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중독성도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시대에 뒤져도 한참이나 뒤진, 구닥다리 꼰대 같은 생각이라고 비난 받아도 좋다. 장난감을 사기 위해 마트 앞에 길게 늘어선 부모들 행렬을 향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첨단 장난감'만 사주려고 애쓰지 말고, 자연의 섭리와 꿈 그리고 상상력을 키워줄 '구식 장난감'도 덤으로라도 사주셔요!"

    올 추석에는 그림 동화책이라도 한 권 사서 자녀들에게 읽혀 보시라.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 엘리스'도 좋고 권정생의 '강아지 똥'도 좋으니 부디 어린 아들과 딸의 메마른 마음 밭에 상상과 꿈의 단비를 뿌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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