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전남 보성군 농민회 소속 백 모(69)씨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무릎 한 쪽을 꿇고 막아보려고 했는데, 막상 물대포를 맞으니 두 손을 땅에 짚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69)씨를 부축하다 역시 물대포를 맞은 A씨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물대포를 맞아보니 그 위력이 워낙 커 어르신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쓰러진 백씨를 부축하기 위해 등으로 물대포를 막았는데, 두발로 서기 어려워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버텼다.
강한 물살이 집중됐던 부위에는 뻐근한 통증이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물대포를 맞고 뇌출혈로 쓰러진 백씨는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 '보이지도 않는 모니터' 보며 물대포 휘둘러물대포를 통한 과잉진압 논란이 거세지자 경찰은 17일 살수차 내부구조와 작동방식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범 운용에 나온 살수차는 백씨를 쓰러뜨린 차량과 연식은 다르지만 실제 집회장에서 사용하는 차량으로 마련됐다.
살수차의 살수를 시연한 경찰은 시위대를 상대로 한 물대포에 규정 위반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진=윤성호 기자)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규정 자체가 문제로 지적된다.
예컨대 사람에게 직접 물을 쏠 때는 상반신을 피하도록 하고 있지만, 살수차 내부를 보면 물을 쏘면서 사람의 상반신을 구분하기 어려운 구조다.
물을 조종하는 경찰관은 조수석에 달린 15인치 모니터 영상을 보며 물이 제대로 나가는지 확인하는데, 살수가 시작되자 내부 모니터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모니터의 3분의 1가량이 거센 물살로 가려지는 까닭이다.
특히 야간에는 어두컴컴한 화면과 물줄기가 합쳐져 현장 식별은 더욱 어려워진다.
모니터에 전송되는 영상의 해상도가 41만 화소로 낮은 편이긴 했지만, 물을 쏘지 않을 때는 10여m 앞까지 관찰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 살수차 구조·운행 방식 개선 필요살수차를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앉은 경찰관 2명이 나눠서 조종하는 것도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물줄기의 방향을 정하고 물을 쏠지 안 쏠지 여부는 오른쪽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살수차 내부에 있는 모니터를 보고 조종한다"면서 "물줄기의 세기는 별도의 인원이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 설치된 제어판을 통해 제어한다"고 설명했다.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행진하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참가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이런 구조에서는 물을 쏘는 사람이 자신이 쏘는 물줄기의 위력을 정확히 체감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는 "물대포를 맞은 사람이 어떤 충격을 받는지 실험한 매뉴얼은 있지만, 상황별로 어떻게 (강도를) 설정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외부 상황은 동료의 무전에만 의존해야 했다.{RELNEWS:right}
그러나 백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을 때 살수차 내부에서는 외부의 다른 누군가로부터 즉각적인 상황을 전달받지도 못했다.
깜깜이인 채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를 휘두른 격이다.
시위대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도록 살수차의 구조 자체와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안전을 담보하는)시스템 마련이 안돼 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며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살수차 사용 지침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