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으로 1963년 정계에 입문해 두 차례나 국회의장을 지낸 8선 원로 이만섭 전 의장은 꼿꼿하고 바른말을 잘하는 '강골'의 소신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발탁돼 1963년 6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6년뒤인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에 나서면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올곧은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출입하던 동아일보 정치부 이만섭 기자는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울릉도를 시찰할 때 그가 탄 배에 몰래 승선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박 의장을 첫 단독 인터뷰하면서 그의 자립경제와 자주국방 구상에 매료된 이만섭은 1963년 대선에서 박 의장의 선거운동을 돕겠다고 나서며 정계에 뛰어들었다.
이 전 의장은 훗날 그 대선을 회고하면서 "그때 보수세력들은 전부 윤보선 후보를 찍고 진보적인 세력은 전부 박 후보를 찍었다. 박 대통령은 결코 보수가 아니다.
민족주의자다. 박 대통령이 날 영입한 게 아니고 내가 자진해서 갔다"고 술회했다.
그의 강골 기질로 인해 반세기 정치인생 이 전 의장은 숱한 일화를 남겼다.
지난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당시에는 개헌을 반대하다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암살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 김형욱은 물러나야 한다"고 발언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김 전 부장이 중정 간부 두 사람을 불러 국가기밀문서 보관함에서 수류탄과 권총을 꺼내주면서 자신을 해치우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당시 김성곤 의원이 박 전 대통령에게 이를 알렸고,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김 전 부장에게 전화해 "이만섭 의원 몸에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기자 시절의 일화에도 이 전 의장의 철저한 원칙과 소신의 면모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1958년 9월 4대 민의원 총선거 재선거가 치러졌을 당시 '정치 깡패'들이 개표장에서 전기가 나간 틈을 타 민주당 표를 없애려 하자 기자석에서 "야 이 도둑놈들아"라고 소리를 치며 뛰어나가 민주당 표를 양팔로 감싸 지키려 한 일도 있었다.
당시 이 전 의장은 깡패들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표를 지키려 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민정 이양 촉구' 발언을 했을 당시에는 다른 언론이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을 때 이를 정면으로 기사화 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당시 이 전 의장은 이후 육군형무소로 이감돼 두 달여 간 고생한 뒤에야 기소유예로 풀려났다다.
국회 속기록에도 그의 이런 비타협적인 기질은 잘 드러난다.
그는 제1공화국 시절 의사당 기자석에서 "자유당 이X들아"라고 외치다 당시 곽상훈 의장으로부터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 조용히 하세요"라는 주의를 받아 속기록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펴낸 회고록 '정치는 가슴으로'에 따르면 이 전 의장은 국회의장 재임 중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예산안 강행 처리를 지시했지만 "날치기 처리는 안 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고 썼다.
지난 1993년 제14대 국회에서 6선의원으로 국회의장에 취임한 뒤 '날치기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던 이 전 의장은 같은해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직접 불러 예산안 처리를 압박했지만 "국회가 파행돼서는 곤란하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예결위에서 날치기로 예산안이 통과되고 여당으로부터는 본회의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넘기라는 압박까지 받자 이 전 의장은 사직서까지 써놓고 물러서지 않았다.
날치기 시도는 미수에 그쳤고, 여야 합의로 각종 법안도 무난히 통과됐지만 이 전 의장은 이듬해 6월 결국 물러났다.
이 전 의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김 전 대통령과의 조찬에서 "날치기 사회를 거부했다고 (의장을) 바꾼 것입니까"라고 물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1993년 8월 헌법재판소가 그로부터 3년전 법안 날치기 통과에 대한 야당의 헌법소원과 관련해 국회 본회의장을 현장 조사하겠다는 통보를 했을 당시 "누구든 의장 허가 없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다"며 맞선 것도 이 전 의장의 굽히지 않는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 전 의장은 2004년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후배들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한명숙 전 대표를 향해서는 "한(恨)의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명박 정부 시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처리' 논란이 일었을 당시 "이명박 정부의 나사가 완전히 빠졌다"고 하기도 했다.
또 정수장학회가 논란이 되자 "정수장학회 이름을 바꾸고 사회에 환원하는 게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