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노컷뉴스가 2015년의 끄트머리에서 올 한 해 문화·연예계를 달군 굵직한 사건들을 되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 온 관련 자료와 정교한 시선으로 사건의 현재와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
① 유병재·최민수·김미화와 함께 기록한 '세월호 1주기 ② 승자 없는 서울시향 사태, 남은 건 언론의 마녀사냥 ③ 네 번 터진 '천만영화'…그 이면의 '양극화' (계속) |
서울 한 영화관의 풍경.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3년 연속 관객수 2억 명, 개봉한 한국영화만 233편. 온갖 산업이 저성장 속에서 허덕일 때도 올 한 해 한국 영화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특히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베테랑', '암살' 등 굵직한 천만 영화들이 탄생하며 그 위상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있는 법. 소위 '중박 영화'라고 불리는 관객수 100만~500만 명 사이의 영화는 여전히 빈약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산업을 탄탄히 받쳐주는 허리가 부재한 '양극화' 현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5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공식통계에 따르면 올 해 '중박 영화'(관객수 100만~500만 명 사이)에 해당하는 영화는 개봉영화 1025편(10월 기준) 중 31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계 관계자들은 올 한 해도 계속된 '양극화' 현상에 대해 어떤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을까.
◇ "다양성 실종의 위험성…관객들 성향도 이분법"멀티플렉스 관계자 A 씨는 '쏠림 현상'을 지적했다. 양극화가 심한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듯이 영화 산업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투자만 해도 그렇다. 천만 영화 감독들은 그 이름만으로 수월하게 투자를 받지만 아닌 감독들에게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는 "중박 영화들이 나와야 해당 감독들이 투자를 받아서 신인도 발굴이 되는 건데 첫 영화가 '유작'이 되는 감독들이 너무 많다. 말 그대로 첫 영화에서 망하면 죽을 때까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영화 시장의 다양성은 점차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영화 산업의 양적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치 아시아를 호령하던 홍콩 영화가 다양성을 잃으면서 몰락의 길을 걸은 것처럼.
A 씨는 "현재 관객 한 명당 한 해에 영화를 평균 4.2편 보고 있는데 다양성이 확보돼야 이 수치가 5~6편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결국 다양성이 사라져 버리면 양적 성장 역시 저하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이미 관객들의 영화 선택은 이분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TV나 컴퓨터로 볼 영화와 극장에서 볼 영화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A 씨는 "극장에서는 흥행 영화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이고, 작은 영화들은 IPTV, VOD 등으로 보면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일반 관객들은 작은 영화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별로 없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면서 "대작들은 이미 홍보 등에서 작은 영화들과 격차를 벌리고, 이런 작은 영화들이 일반 관객들에게 인식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 멀고 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 시장 자체가 현재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고 봤다. 스크린 수는 적은데 영화 개봉 편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관객들의 이분법적 성향과 함께, 이 같은 이유가 '양극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A 씨는 "시장 규모에 비해 작품이 많다 보니, 개봉 첫 주 안에 관객들을 잡은 영화가 아니면 극장에서 바로 내려질 만큼 순환이 빠르다. 매주 개봉하는 영화 편수가 5~10편은 된다. 이미 국내 시장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반기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과 '암살'의 포스터.
◇ "'파레토의 법칙'으로 왜곡된 시장 구조…정부가 가이드 앞장 서야"오동진 영화평론가는 현재 영화 산업이 '파레토의 법칙'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파레토의 법칙'은 흔히 '2대 8의 법칙'으로 불리며 상위 20%가 경제력의 80%를 차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오 평론가는 "영화는 국가의 정치·경제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국가의 양극화가 심하면, 영화 산업도 그렇게 된다"면서 "몇 편의 영화가 관객의 80%를 가져가고, 대다수 영화가 20%를 나눠 가진다. 대자본이 시장을 완벽하게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공급이 과잉된 상태"라고 꼬집었다.
이어 "올 한 해 동안에도 관객을 많이 모았음에도 한국 영화 시장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5년이 지나면 시장이 공멸할 것으로 예측한다. 구조 자체가 왜곡된 상황인데 이것이 망가진 후에는 고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스크린 독과점과 공급 과잉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극장이 많아지면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한 편으로는 또 다른 자본이 들어서 독과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오 평론가는 "규모가 큰 상업 영화들은 기존의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고, 대안 상영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아무리 애써도 관객이 1000명 밖에 들지 않아 힘들어 하는 영화들의 상영 공간을 터줘야 된다는 것인데, 구민회관·문화회관·대학강당 등의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현 정부에게 그런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정책 방향성을 갖고 유도등을 켜줘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그 쪽으로 작은 영화들을 유도하고, 티켓팅 방법도 만들고, 가격대도 설정하고, 상영관도 선별해줘야 하는데 이 같은 가이드 라인이 전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 "큰 영화에만 기대는 업계…일년 내내 대기업 입사시험 치르는 격"
물론 다양성 영화들에 대한 제작 지원 시스템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 작은 영화가 온전한 순환 구조를 가지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호응을 얻고, 원할한 수급과 환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국내에서는 저예산 영화가 잘 되기가 힘들다. 1000명 관객이 드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고 경쟁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대중의 문화적 습관은 길들여진다. 이들 영화들이 자꾸 눈에 보이면 관객이 일정 부분 늘어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류승완, 최동훈과 같은 천만 영화 감독이든 신인 감독이든 영화인이라면 이 같은 현상을 기뻐할 수만은 없다. 큰 상업 영화에서 활약하던 이들도 얼마든지 작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영화들이 설 입지 자체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