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해냄출판사
하나님이 자신보다 동생 아벨을 더 사랑한다고 믿은 나머지,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친 카인은 놋 땅으로 간 뒤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정말 하나님은 카인은 저버리고 아벨만 좋아하신 걸까?
주제 사라마구는 신간 장편소설 『카인』에서 카인이 10여 년 동안 떠돌면서 창세기 속 사건을 곁에서 보고 느끼고 직접 경험하며 이야기하는 형식을 빌려 소설을 전개한다.
구약성경 창세기 4장에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하나님에 의해 이마에 낙인찍힌 이후 성경에는 더 이상 비중 있게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카인의 눈을 통해 신의 존재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세상을 되돌아본다.
카인에게 비춰지는 하나님의 형상은 결코 너그럽지도 자애롭지도 않다. 아들을 희생으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아브라함이 받는 모습, 하늘에 닿고자 거대한 탑을 짓는 사람들을 향해 여호와가 허리케인으로 한 일, 여호와가 벌로 불과 유황을 내리는 광경, 시나이라고 불리는 산의 기슭에 모인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그 죄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 을 직접 경험하는 카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되묻기에 이른다.
저자는 『예수복음』을 신약성서에 더하고 『눈먼 자들의 도시』로 묵시록을 재해석한 데 이어 『카인』으로 구약성서를 재해석했다. 독특한 내레이션 방식, 우화적 수법, 환상적 요소의 도입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본문 중에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말 또한 그 나름의 이유와 원인이 있다. 어떤 말은 마치 대단한 일을 할 운명인 것처럼 엄숙하게, 오만하게, 우리를 부르지만 결국에는 너무 가벼워 풍차의 날개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반면 평범하고 습관적인 말, 매일 사용하는 말이 결국 누구도 감히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를 낳아,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세계를 흔들기도 한다. 감독은, 안으로, 하고 말했고, 그것은, 안으로 들어가서 진흙을 밟고 일용할 양식을 벌어,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몇 주 뒤 릴리스가 이름이 아벨이라고 들은 남자를 불러 똑같은 말,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은 말, 안으로,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서는 아주 신속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는 여자가 침실 문을 여는 데 몇 주나 걸렸다는 것은 아주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여기에도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점은 곧 분명해질 것이다.
―61~62쪽 중에서